격투기 선수 은퇴를 선언한 정찬성. (사진 AFPBBNews=News1 제공)
격투기 선수 은퇴를 선언한 정찬성. (사진 AFPBBNews=News1 제공)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코리안 좀비,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박재범 let’s go.”

‘월드클래스 라인’으로 불리는 박재범 노래 가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코리안 좀비’ 정찬성(36). 그의 뜨거웠던 커리어가 마침표를 찍었다.

정찬성은 지난 8월26일 UFC 페더급 1위 맥스 할로웨이(31·미국)와의 결전에서 패한 후 “나는 3, 4, 5등이 아닌 챔피언이 되기 위해 경기하는 선수다. 톱랭커를 이기지 못하는 건 그만할 때가 왔다는 것"이라며 은퇴를 선언했다.

좀비 같은 맷집과 화끈한 주먹으로 전 세계 격투기 팬들의 사랑을 받은 정찬성. 그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던 타지에서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고, 커리어 마지막 순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전설로서 옥타곤을 떠났다.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산 특급 좀비’

정찬성은 UFC에 입성하기 전부터 화끈한 격투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2010년 WEC에서 활동한 그는 당시 페더급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평가를 받던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3라운드 15분 동안 엄청난 난타전을 펼쳤다. 당시 정찬성은 결정적인 타격을 적중했음에도 의외의 판정패를 당했다. 하지만 이 경기를 목격한 전 세계 격투기 팬들은 메이저 무대에서 무명에 가깝던 그의 겁 없는 활약에 열광했다. 이 경기로 ‘코리안 좀비’는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같은 해 WEC가 UFC에 합병되면서 정찬성은 가르시아와 재대결로 UFC 데뷔전을 치렀다. 난타전 성격의 첫 맞대결과는 달리 타격과 그라운드 양상에서 모두 우위를 점했고, 결국 2라운드서 UFC 최초로 고난이도 그라운드 기술인 ‘트위스터’를 사용해 서브미션승을 거뒀다.

정찬성은 이후 페더급 타이틀전 경험이 있는 마크 호미닉을 7초 만에 쓰러뜨리고, 지금까지도 UFC 인기 스타로 활약하고 있는 더스틴 포이리에를 압도하며 타이틀 도전에 더욱 가까워졌다.

UFC가 2013년 2월 처음으로 체급별 공식랭킹을 발표했을 때 정찬성은 당시 페더급 챔피언 조제 알도, 1위 채드 멘데스, 2위 리카르도 라마스에 이어 페더급 3위에 올랐다. 당시 정찬성의 3위 기록은 한국인 UFC 역대 최고 순위였다.

정찬성은 같은 해 8월 알도와 페더급 타이틀전을 치르며 한국인 최초 UFC 타이틀전을 치른 선수로도 기록됐다. 당시 페더급에 적수가 없던 알도를 상대로 정찬성은 다른 선수의 부상으로 갑작스레 타이틀전 기회가 왔다는 점과 어깨 부상을 안고도 경기에 나서며 4라운드까지 선전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부상과 군 입대로 인한 약 3년의 공백 후 2017년 2월 정찬성은 당시 페더급 9위였던 데니스 버뮤데즈를 상대로 한 복귀전을 치뤘다. 그는 오른손 어퍼컷으로 1R 2분30초 만에 KO 승리를 거둠과 동시에 페더급 9위에 올라서며 좀비의 귀환을 알렸다.

2018년 야이르 로드리게스에게 아쉽게 패하며 페더급 12위로 주춤했던 정찬성은 2019년 헤나토 모이카노와 프랭키 에드가 등 까다로운 상대를 연속으로 잡고 페더급 4위까지 랭킹을 끌어올렸다.

정찬성은 이후 브라이언 오르테가, 댄 이게와의 맞대결을 치르고 지난해 4월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와 페더급 타이틀전을 가졌다. 한 번도 어려운 UFC 타이틀전을 두 번이나 치른 것. 그는 챔피언 등극에 실패했지만 2013년 알도와의 첫 타이틀 전 이후 9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다시 타이틀 도전자로 나설 정도로 실력을 유지했다. 선수들과 팬들은 그런 그의 꾸준함에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정찬성은 이번 은퇴 경기 직전 페더급 8위였다. 은퇴 경기 상대는 챔피언 볼카노프스키 바로 다음인 페더급 1위이자 동시대를 풍미한 강자 할로웨이였다. 활동기 내내 UFC 페더급 랭커로 군림한 정찬성은 마지막 경기에서도 상징적인 상대와 싸우며 놀라운 커리어를 마쳤다.

냉철한 전략가 vs 낭만 좀비
파이터 정찬성 지탱한 두 얼굴

정찬성은 킥복싱을 기반으로 한 타격과 주짓수를 주무기로 한 그라운드에서 모두 뛰어난 선수였다. 정찬성이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거둔 통산 17승 중 KO-TKO 6승, 서브미션 8승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나의 무술만을 극한까지 익힌 격투가와 달리 정찬성은 다양한 무기를 갈고 닦아 적재적소에 골라 쓰는 전략에 능하기 때문에 KO와 서브미션 비율이 비슷했다. 또한 그는 타격과 그라운드에서 여러 가지 수를 보유했기에 가르시아전 UFC 최초의 트위스터 서브미션, 포이리에전 테이크 다운 허용 직후 포지션 역전 등 순간적인 기회를 잘 포착하는 선수로도 유명했다.

물론 정찬성은 커리어 초반부에 수 싸움과는 거리가 먼 ‘좀비 스타일’의 화끈한 접근전을 펼치며 전 세계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가르시아와의 첫 맞대결에서 선보인 난타전이 대표적이다. 뛰어난 타격 실력과 엄청난 맷집으로 밀고 들어가는 그의 초기 스타일은 ‘코리안 좀비’라는 자신의 별명과도 잘 어울렸다. 정찬성은 이후 성적과 건강을 고려해 무리한 돌격을 자제했지만 할로웨이와의 은퇴전에서 판정으로 갈 경우 불리할 것이라고 예상해 좀비 모습을 꺼내들며 마지막을 뜨겁게 장식했다.

승자 할로웨이 “마지막 상대여서 영광”

정찬성은 종합격투기 역사상 최고의 한국 선수라고 말할 수 있다. 2013년 기록한 UFC 페더급 3위는 UFC 한국 선수가 기록한 것 중 역대 가장 높은 순위다. 한국 선수 최초 UFC 타이틀전을 치른 것도 모자라 두 번이나 챔피언에 도전했다. 2012년 포이리에전부터 할로웨이와의 은퇴전까지 10회 연속으로 대회 메인이벤트를 장식하며 오랜 기간 동안 정상급 격투가의 위상도 과시했다.

정찬성은 실력은 물론 인기에 있어서도 ‘월드클래스’였다. 그의 별명인 ‘코리안 좀비’를 활용해 만든 티셔츠는 2010년 종합격투기 티셔츠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UFC CEO 데이나 화이트가 해당 티셔츠를 입고 공식 석상에 나타날 정도였다. 최홍만 전성기 이후 주춤했던 국내 격투기 인기 역시 정찬성의 활약으로 급상승했다. UFC가 서울과 부산에서 대회를 개최한 것도 그의 영향력 때문이다.

정찬성의 은퇴 경기 상대였던 할로웨이는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정찬성은 이 스포츠를 바꾼 레전드"라며 "코리안 좀비의 마지막 상대가 돼 영광"이라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외에도 코너 맥그리거, 더스틴 포이리에, 헨리 세후도 등 수많은 UFC 스타들이 정찬성의 커리어에 박수를 보냈다. 타국 리그를 전전하며 스스로를 중명한 파이터 정찬성은 은퇴의 순간 세계 최고 선수들에게 레전드 대우를 받으며 박수칠 때 떠났다.


김성수 스포츠한국 기자 holywater@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