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손 볼러’ 국가대표 배정훈. 사진=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양손 볼러’ 국가대표 배정훈. 사진=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경기도 수원시의 곡정고등학교. 고등학교 2학년에 막 진학한 17세 볼러 배정훈에게는 흥미로운 수식어 세 개가 따라 다닌다. 볼링을 정식으로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청소년 국가대표가 되고, 3년여 만에 성인을 포함 정식 국가대표가 됐다는 점과 국가대표 8명 중 유일하게 고등학생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한국 볼링 역사상 최초의 ‘양손 볼러’ 국가대표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볼링을 떠올릴 때 한 손으로 15파운드(약 6.8㎏)의 무거운 공을 들어 올려 강하게 핀을 치는 것을 떠올리지만 배정훈은 다르다. 양 손을 이용해 몸의 반동으로 스트라이크를 쳐 한국 최고라는 국가대표의 입지에 올라섰다. ‘고교생 국가대표’ 배정훈을 수원 빅볼 볼링장에서 만나 양손 볼러가 된 계기와 함께 볼링 국가대표로서의 각오를 들어봤다.

“멋있어서” 유튜브 보고 따라한 양손 던지기

일반적이지 않은 양손 볼러가 된 이유를 처음부터 물었다. 배정훈의 대답은 간단하게도 “멋있어서” 였다. 여느 아이들처럼 부모님을 따라 가끔 볼링장을 따라갔던 배정훈은 우연찮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세계 최고 양손 볼러인 제이슨 벨몬트(40·호주)의 영상을 접하게 됐다.

벨몬트는 미국프로볼링협회(PBA) 역사상 가장 많은 메이저 우승(15회) 기록을 가진 볼링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벨몬트가 양손으로 멋지게 던져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은 배정훈을 매혹했고, 자연스레 자신도 양손으로 던지는 것을 연습해 봤다. 또래 친구들이 아이돌 카리나를 볼 때 배정훈은 벨몬트를 봤다.

그러다 볼링에 적극적인 흥미를 가지게 됐고 다소 늦은 중학교 2학년에 볼링 선수를 시작했다. 그는 볼링 선수로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최연소 청소년 국가대표에 발탁될 정도로 볼링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양손으로 던지면 공에 회전이 더 많이 걸려요. 볼링은 결국 공에 마찰을 잘 줘서 회전을 잘 넣는게 핵심인데 저는 확실히 그 감각을 타고 났다고 봐요.”

그렇다고 재능만 있는 게 아니다. 하루 내내 훈련만 한다. 학교를 다니기에 수업을 마치는 오후 4시부터 볼링 훈련만 한다. 저녁밥 먹는 시간을 빼고 볼링장이 문을 닫는 오전 1시까지 온종일 볼링이다. ‘집→학교→볼링장→집’의 반복이다. 볼링부가 있는 학교가 아니기에 친구들은 배정훈을 신기해할 뿐이다. 아무래도 또래 친구들보다는 선생님들이 볼링을 알려달라고 묻기도 한다.

“친구들은 대학 입시 공부를 그만큼 하잖아요. 그냥 친구들이 공부하는 만큼 저도 볼링을 한다고 생각해요. 공부할 때 잠을 줄여서 공부하는 것처럼 저도 친구들처럼 잠을 줄여가면서 볼링을 쳐야죠. 그래야 좋은 대학을 가듯 저도 좋은 볼링선수가 되죠.”

‘고등학생+최초 양손핸드볼러’ 국가대표…자부심과 책임감 느껴

지난달 24일 끝난 볼링 국가대표 선발전은 배정훈에게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날을 앞두고 전체 선수 중 2등으로 마쳐 이 정도면 선발전 1위까지 노려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받았다. 하지만 마지막 날 급격한 멘탈과 체력 저하로 2위였던 순위가 8위까지 추락했다. 8명 뽑는 국가대표에 마지막 순번을 겨우 지켜내며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평소에 긴장을 안하는데 그날 너무 긴장했다. 국가대표가 눈앞에 오니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더라”며 웃는 배정훈에 대해 볼링 전문가들 역시 “마지막 날 아직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라는 게 티가 많이 났다. 하지만 기량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경험은 쌓으면 된다”고 충고한다.

국가대표 최고참은 41세. 17세인 배정훈은 문자 그대로 아들뻘이다. 그럼에도 “국가대표 나머지 선수들이 모두 실업팀 선수들이다. 하지만 쫄지 않겠다. 나이보다는 볼링의 경쟁자로써 국가대표에서 살아남겠다”고 당돌한 각오를 밝힌 배정훈.

최초의 양손 볼러 국가대표라는 점에서도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낀다. 사실 양손 볼러 국가대표가 없었을 뿐 배정훈 또래 어린 유스 볼링선수들 중 절반 이상이 양손 볼러다. 예전에는 양손 볼러를 볼링계에서 이단아 취급하고 불편하게 여겼지만, 벨몬트의 성공이후 어린 선수들은 물론 동호인들 역시 양손 볼러에 재미를 느껴 시도하고 있다. 볼링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점에 배정훈은 단순히 유일한 고교생 국가대표라서가 아니라 양손 볼러로서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점에서 볼링사에 큰 의미를 가진다.

“올해 국가대표가 있는데 기존에 하던 청소년 국가대표와도 병행해요. 청소년 국가대표로는 세계선수권, 국가대표로는 아시아 선수권을 앞두고 있는데 이제 세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 벨몬트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어요. 물론 가끔은 ‘고교생 국가대표’나 ‘최초의 양손 볼러 국가대표’라는 수식어가 저의 어깨를 누르지만 지금은 볼링이 그저 재밌고 스트라이크의 짜릿함을 매일 느끼고 싶을 뿐이에요. 볼링에서도 손흥민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보고 싶어요.”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