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게시된 매물. 사진=연합뉴스
지난 1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게시된 매물. 사진=연합뉴스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부동산 침체기에도 분양은 계속된다. 최근 ‘줍줍’(잔여세대 무순위 청약) 같은 사례가 아닌 일반분양에서도 '100대 1'의 괄목할 만한 경쟁률을 기록하는 단지가 일부 나타나 눈길을 끈다. 일대 다른 아파트 매매가보다 많게는 수억원 더 저렴한 가격에 분양가를 책정한 단지들이다. 아파트 시세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가격경쟁력이 명확한 사업지로 청약이 몰리는 것으로 보인다.  

시세보다 저렴하면 '우르르'
봄 분양, '옥석 가리기' 분주

최근 서울 신축 아파트 분양에서도 인근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성황을 이루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강동구 ‘더샵 둔촌포레’는 지난 12일 1순위 청약에서 조기 마감됐다. 47가구 모집에 총 4374명이 접수해 평균 93.0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결과다. 최고 경쟁률은 155.33대 1의 84㎡B 타입으로, 분양가가 일대 시세보다 저렴한 13억원 후반대로 설정돼 가격 경쟁력이 두드러졌다. 인근 단지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84㎡ 입주권은 최근 18억~19억원대에 거래된 바 있다.

지난 5일 일반 분양한 서울 서대문구 ‘경희궁 유보라’도 인근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이곳은 전용 59㎡ 10억원, 전용 84㎡ 13억원 수준으로 각각 분양가를 책정해 최근 19억 5000만원에 거래된 ‘경희궁 자이 2단지’나 '경희궁 롯데캐슬’(15억원)에 비해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경희궁 유보라는 1순위 청약 때 57가구에 7089건이 접수돼 청약 경쟁률이 평균 124.4 대 1까지 치솟았다.

다만 이와는 반대로 경기 평택의 ‘지제역 반도체밸리 해링턴 플레이스’나 경기 이천의 ‘롯데캐슬 센트럴 페라즈 스카이’처럼 모집 가구수의 채 절반도 접수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분양경기가 전반적으로 둔화한 가운데 시세차익을 볼 가능성이 높은 아파트로 청약자가 편중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함영진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부동산리서치 부장은 “주변시세 대비 분양가가 적정한지 잘 살펴야 한다"며 "지역 호재나 역세권 여부·건설업체 브랜드에 따라 청약수요가 양극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현명한 청약통장 사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방은 전국 평균보다 낮은 분양가 잇따라 

이처럼 시장이 분양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앞서 가파른 오름세로 수분양자의 부담이 커진 영향도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분양가는 지난해 3.3㎡당 평균 1800만원이었다. 전국 평균치가 1800만원대에 진입한 것은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올 상반기 이어지는 분양 일정을 보면, 3.3㎡당 평균 1800만원보다 분양가를 낮게 책정한 단지가 다수 눈에 띈다. 대전 성남 우미린 뉴시티 분양가는 3.3㎡ 당 1630만원 수준에 책정됐다.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5억 7000만~5억 8000만원에 분양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인근에서 입주자를 모집한 ‘힐스테이트 가양 더와이즈’ 84㎡ 의 분양가인 5억 53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DL이앤씨는 울산시 울주군 상북지구 도시개발사업구역에 ‘e편한세상 서울산 파크그란데’를 공급한다. 지하 3층~지상 23층, 6개 동, 전용면적 68~114㎡, 총 607가구 규모로 조성되는 단지로, 울산 최저 수준에 해당하는 3.3㎡당 평균 1000만원대에 분양가가 설정됐다. 특히 전용 84㎡ 주택형은 3억 2000만원대부터 시작, 일대 동일 면적 세대가 4억원대에 시세가 형성된 점을 감안하면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가량 저렴한 편이다. 1차 계약금 500만원 정액제와 중도금 전액 무이자, 발코니 확장 무상 제공 등의 부가 혜택도 주어진다.

제일건설과 호반건설이 광주광역시에서 공급하는 ‘봉산공원 첨단 제일풍경채’는 3.3㎡당 1600만원대에 평균 분양가를 설정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책정한 작년 기준 광주지역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3.3㎡당 1811만원)보다 저렴하다. 여기에 1차 계약금 1000만원 정액제로 초기 자금 부담을 줄이고, 발코니 확장 시 무상 옵션을 제공한다.

'분양가 낮추자' 시행주체 측이 요구하기도 

이처럼 여러 사업지에서 분양가가 낮게 책정된 이유는 아파트 공급을 추진하는 시행사 입장에서도 고분양가로 미분양이 적체되는 것은 부담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경기에 크게 영향 받는 지방 아파트는 이런 리스크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6만 3755가구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지방 미분양 주택은 5만 3595가구로 전월(5만 2458가구) 대비 2.2%(1137가구) 증가했다. 지방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연속 증가세다. 

최근에는 시행주체 측이 사업수익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분양가를 더 낮춰야 한다고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하는 이례적 사례도 나타났다.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아파트 2772가구와 공원을 조성하는 ‘광주 중앙공원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롯데건설 시공)은 대표주간사인 한양이 “현재 책정된 분양가가 지나치게 높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 사업의 공동시행 사업자인 광주시는 올 상반기 분양 계획을 잡고, 최근 전남대학교 산학협력단의 검증을 받아 중앙공원1지구의 3.3㎡당 분양가를 2425만원에 책정한 바 있다.

한양은 지난 4일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시와 빛고을중앙공원개발(SPC) 등이 제시한 선 분양가는 토지비·공사비·금융비 등이 부풀려진 금액으로, 그보다 저렴한 분양가에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다 책정된 비용 정상화, 분양성 개선, 사업자 이익 축소 등을 통해 사업비를 절감하면 평당 1990만원에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한양은 시민들에게 사업비의 세부산출 근거자료 일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고, 광주시는 이달 18일 회의를 열어 초과이익과 사업계획 변경 적정성 등을 공개 검증하기로 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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