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탑역 인근 광장에 내걸린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현수막. 사진=안병용 기자
야탑역 인근 광장에 내걸린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현수막. 사진=안병용 기자

[주간한국 안병용 기자] 한때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시중에 회자됐다. 의료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준 높은 시설과 혜택을 접할 수 있어 서울 못지않게 살기 좋은 도시라는 구민들의 만족감이 대중의 좋은 평판으로 이어지며 만들어진 구절이다. 분당은 거주와 별도로 생활권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두는 지역민들이 많아 정치적으로는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분류된다. 실제 분당 선거구에서는 갑·을로 나눠진 2000년 16대 총선 이후 대체로 보수 정당의 후보가 승리했다. 특히 분당갑에서 민주 계열의 정당이 승리한 것은 단 한 차례에 불과하다.

따라서 민주당의 정치인이 분당에서 치러지는 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2011년 야당인 민주당을 이끌던 손학규 후보가 범보수 여권의 국회 의석이 200석이 넘던 당시,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당 대표를 지낸 강재섭 후보를 상대로 승리한 선거는 ‘분당 대첩’으로 불릴 정도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짜여진 분당갑의 매치업인 ‘안철수 vs 이광재’는 2011년 당시와 비견될 만하다. 차기 대권주자와 여전히 정계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친노계(친노무현계)의 핵심이 맞붙는다는 점에서다.

이광재 전 총장은 과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원조 친노’ 색이 짙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곳인 강원도에서 정치적 기반을 닦아왔다.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선거구에서 재선을 지냈다. 도 내에서 지역구를 옮겨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원주갑에 출사표를 던져 3선 고지에 올랐다.

도민들로부터 강원도지사로도 선택받는 등 ‘강원도의 아들’ 이미지가 강하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강원지사 재선에 도전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다가 김진태 국민의힘 후보에게 석패했다. 지난해 말 국회 사무총장직을 내려놓고 이번 총선을 준비해 왔다.

현역인 안철수 의원 역시 4선에 도전하는 중진이다. 서울 노원병에서 재선을 지낸 안 의원은 2022년 보궐선거를 통해 분당에 둥지를 틀었다. 이미 대선에 여러 차례 출마한 경험이 있는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다. 20대 대선에서는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했고, 그 영향으로 한때 윤석열 정권의 초대 국무총리로 거론되는 등 정치적 중량감은 국회의원 선수(選數)만큼이나 묵직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낸 뒤에는 5년 만에 원내에 복귀하는 데 성공한 뒤 국회의원으로서 지역구 관리에 전념해 왔다.

분당갑은 서현1~2동, 이매1~2동, 야탑1~3동, 판교동, 삼평동, 백현동, 운중동 등으로 이뤄졌다. 1기 신도시 일부와 2기 신도시가 하나로 묶여 있어 지역민들이 선호하는 정당과 정치인도 각양각색이다. 분당을 가로지르는 탄천이 기준이다. 한쪽에는 서현·이매·야탑동 등 분당신도시가, 반대편엔 판교신도시가 자리 잡았다. 분당신도시는 4050 중산층이 주를 이루고 있어 소득과 생활 수준이 높은 데다 강남의 영향을 받아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다. 반면 정보기술(IT) 단지가 밀집한 판교신도시는 2030 세대의 유입이 많아지고 있어 진보 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지는 추세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지형적으로 분리된 두 곳의 민심만큼이나 표심도 ‘정부지원론’과 ‘정권심판론’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진 제공=안철수캠프, 이광재캠프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진 제공=안철수캠프, 이광재캠프

지난 12일 야탑역 인근 광장에서 분식을 먹던 허모(52)씨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면서 “물가 높은 것 봐라. 그래서 어묵이나 사먹는다”며 여권에 불만을 표했다. 반면 옆에서 떡볶이를 먹던 김모(53)씨는 “민주당도 잘하는 것이 없다”면서 “본인들 욕심만 챙기려는 것 못 봤냐”며 힐난했다.

신도시 특성이 반영된 반응도 나왔다. 야탑1동 행정복지센터 앞에서 만난 박모(36)씨는 “신도시에는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상당수”라면서 “안철수 의원처럼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32년째 산다는 김모(68)씨는 “이광재가 민주당에선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라고 되물으며 “능력과 공약보고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치안 강화에 대한 요구도 제기됐다. 지난해 8월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던 서현역 앞에서 만난 안모(27)씨는 “치안에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짧게 말했다. 민생 문제도 언급됐다. 서현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최모(39)씨는 “코로나가 끝난 뒤에도 전기요금 등 공과금 내기에 급급하다”면서 “소상공인들을 잘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말끝을 흐렸다.

젊은 인구가 대거 유입되고 있는 판교의 민심은 이번 분당갑 선거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이 전 총장이 인지도가 낮은 데다 젊은 층에 집중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개혁신당의 존재감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줄곧 패배의 쓴잔만 마시던 민주당이 지난 20대 총선에서 김병관 후보를 내세워 권혁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를 8.5% 차이로 다소 여유 있게 이긴 것도 판교 등 2기 신도시에서의 우위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판교의 경우 김병관 51.47% vs 권혁세 35.29%).

판교 IT기업에서 일하는 정모(29)씨는 “출퇴근 때마다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면서 “교통 여건이 개선되고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는 공약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에 거주하는 회사원 박모(31)씨는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억 소리가 난다”면서 “거주 지원 정책을 눈여겨보려 한다”고 했다.

판교에 사는 주민들이 주목할 만한 이력을 가진 출마자는 거대 양당 후보들 말고도 또 있다. 개혁신당의 류호정 전 의원이다. 류 전 의원은 판교에 있는 한 게임 회사에서 해고된 뒤 청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가 국회에 입성했다. 정의당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원내 입성한 이후에도 야탑동에 사무실을 내는 등 분당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분당에서 10년 넘게 살았다. 개혁신당이 중도‧개혁을 표방하는 만큼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표심을 흔들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일단 갖췄다.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류호정 개혁신당 후보. 사진=류호정 캠프

류호정도 참전한 분당갑...재건축 문제가 표심 가른다

분당갑의 최대 이슈는 재건축이다. 1기 신도시인 분당에 시민들이 입주하기 시작한 시기가 1992년이니 그보다 앞서 완공된 아파트들은 이미 만들어진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재건축의 필요 요건인 안전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지난 것이다. 올해 4월 27일부터는 재건축·재개발 요건을 완화하는 ‘노후계획도시 정비·지원 특별법’이 시행될 예정이어서 유권자들이 갖는 기대감도 클 만하다.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주부 허모(38)씨는 “아파트에 금이 가고 물이 새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재건축을 빨리 진행할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하게 접근할 사안은 아니다.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공사비가 급격히 치솟아 전국의 재건축·재개발 현장이 비상이기 때문이다.

분당에서 14년째 살고 있다는 직장인 이형선씨는 “무턱대고 재건축 속도를 높이면 안 그래도 복잡한 교통문제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세부적인 주거환경 개선에 힘쓰는 후보를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IT기업에 종사하는 20대 직장인 이성희씨 역시 “재건축은 당장 나에게 도움이 되는 문제는 아니다”면서 “좀 더 피부에 와닿는 공약을 보겠다”고 말했다.

후보들은 재건축 문제부터 파고들며 표심 잡기에 나선 상태다. 안 의원은 1호 공약으로 ‘신속한 재건축’을 내걸었다. 그는 10년 이내에 이주단지를 확보해 재건축을 빠르게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안 의원이 발의한 ‘노후 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전 총장은 성남 서울공항의 고도제한을 풀어 재건축의 사업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지난달 26일 전국적으로 339㎢(약 1억 255만평) 규모의 보호구역을 해제하면서 분당도 포함시켰다.

류 후보는 행정 수요에 맞춰 분당구를 ‘분당시’로, 판교동·삼평동·백현동·운중동 등은 ‘판교구’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다. 재건축만큼 중요한 주거환경 개선에도 집중하겠다는 생각이다.

현재까지 민심은 일단 안 의원의 4선 도전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9~10일 유권자 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안 의원이 45%, 이 전 총장이 36%, 류 전 의원이 2%로 나왔다(전화면접 방식, 응답률 10.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분당갑에서 탄탄한 안 의원의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현역인 분당을까지 회복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 쌓아놓은 유산에 민주당 소속인 김동연 경기지사와의 호흡을 앞세워 ‘어게인(Again) 분당대첩’을 노리고 있다. 류 전 의원은 그야말로 ‘언더독’ 입장에서 맞서 싸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 소속이 아닌 정당 후보로 지역구에서 당선된 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밖에 없었다.

야탑사거리에서 만난 50대 홍석두씨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딸을 1명씩 뒀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재건축은 잘 모르겠고 아직 교육비가 많이 든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누구든지 민생 살리기에만 온전히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라며 한숨을 내쉬고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안병용 기자 byah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