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의 주택가에 모아주택을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게재돼 있다. 사진=독자 제공 
지난 21일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의 주택가에 모아주택을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게재돼 있다. 사진=독자 제공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 서울시와 일부 자치구가 지역 주민들의 충분한 동의없이 '모아타운' 개발을 추진해 논란을 빚고 있다. 모아주택은 구빌라, 단독주택 등 저층 주거지를 철거하고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짓는 소규모 주택정비사업이다. 당국은 저층 주거지를 모아타운 구역으로 지정하고 모아주택 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허가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이미 민간에서 조합을 만들고 자체적으로 개발을 추진해 온 곳을 뒤늦게 모아타운 구역으로 지정하려고 해 기존 조합원들이 개발구역 '중복 지정'이 우려된다며 사업차질 등 재산 피해를 호소하고 나섰다.

화곡동 지역주택조합원들이 모아주택에 뿔난 이유는

지난 21일 서울시 강서구 화곡1동. 이곳은 집집마다 '모아주택 결사반대'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모아주택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감을 실감케 했다. 반발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은 화곡1동 421‧424번지 일대에 위치한 지역주택조합 조합원 100여명으로, 이들은 오는 27일 강서구청에 모여 집회를 열고 진교훈 강서구청장에게 민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화곡1동 421‧424번지는 일부 소유주들이 ‘화곡1지역주택조합’(가칭)을 만들고 2020년부터 조합원을 모집했다.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정식 조합은 아니지만 이들은 이미 주민참여형 지역주택조합 방식으로 개발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서울시가 이를 무시하고 모아타운 구역을 지정하려고 해 중복 지정으로 자신들이 밀려나게 생겼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모아타운 구역으로 지정되면 모아주택을 만들기 위한 추진위원회 성격인 '주민합의체'를 만드는 요건이 일부 완화된다. 이로 인해 모아주택 개발쪽으로 주민들 의견이 모아지고 기존 지주택 조합은 사업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시는 ‘화곡1동 354‧359번지’ 일대를 모아타운으로 개발하도록 관리계획을 승인했다. 이때 당국은 인근의 화곡1동 421‧424번지도 모아타운 구역으로 포함하려 했다. 모아타운은 구역이 넓을수록 3.3㎡당 공사비 단가가 낮아져 이왕 개발한다면 인근 지역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사업성에 유리하다.

결국 강서구는 이들 지역도 모아타운으로 개발하도록 관리계획을 세우겠다고 공고를 냈다. 화곡1지역주택조합은 거세게 반발했다. 관리계획을 설정하면 소유주가 기존 빌라 등 헌 집을 내놓고 그 대가로 새 집을 얼마나 받을지가 결정되는데, 서울시가 지역주택 조합원들 의사는 무시하고 모아주택 개발로 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진=독자 제공
사진=독자 제공

이명국 화곡1동지역주택조합 사무국장은 “모아주택으로 추진하면 기존 집은 공시가격의 1.5배 가격으로만 평가받는다고 하더라. 이 조건이면 빌라 주인들은 재산 가치가 평가절하돼 입주시 5억원이 넘는 분담금을 내야 한다”며 “우리 지역은 고령의 조합원들이 많은데 이 돈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421‧424번지는 심의에서 관리계획이 보류됐다. 강서구 관계자는 “이 지역은 이미 지역주택조합으로 개발 추진 중이므로 조합원 반발 등 분쟁 요지가 있다는 이유로 당시 심의에서 보류됐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주택 사업을 추진하는 동안은 이 지역에 모아타운 관리계획을 수립하지 않을 예정이나, 향후 지주택 조합이 해산하거나 최종 무산된다면 다시 모아타운으로 관리계획 수립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개발구역 중복 설정으로 반발이 있는 곳은 화곡동에 또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화곡6동 1130-7번지’ 일대도 모아타운으로 관리계획을 승인했는데, 이 때 인근의 화곡6동 1133-7번지도 모아타운 구역으로 엮어 심의에 넣었었다. 그 결과 이곳은 모아타운 구역으로 지정됐으나 모아주택 사업지로 지정되지는 않아 존치지역으로 남았다. 1133-7번지는 2020년 ‘화곡6동지역주택조합’(가칭)이 설립인가를 받아 360세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 ‘강서 메트로파크’로 개발을 이미 추진 중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강서구가 이곳을 모아주택 후보지로 설정하면서 지주택 개발은 동력을 일부 잃었는데, 이번에 모아타운으로도 들어가면서 모아주택 개발을 추진할 근거가 보다 확보됐다. 이에 대해 화곡6동지역주택조합 조합원들은 반대의견을 내고 있으나 서울시는 지역주택조합을 막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주민 의견수렴 일절 없이 일방적으로 후보지 지정

섣부른 개발 정책으로 인한 혼선은 결국 주민과 소유주들의 몫이다. 일단 모아주택 후보지로 선정되면 지역주택조합을 비롯해 개발에 반대하는 소유주들이 보유한 건물이나 토지도 일괄적으로 권리산정기준일이 설정돼 매매 때 제약을 받는다. 

기자가 취재한 화곡 1동, 화곡 6동의 사례를 살펴보니 지역주택조합이든 모아주택 추진위원회든 각자 단지 설계나 홍보 등으로 많게는 수억 원의 비용을 이미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어느 쪽이 물러서든 이 비용이 곧 막대한 손실로 돌아오는 상황인 것이다. 이 때문에 서로 지지층을 뺏고자 비방하고, 홍보회사(OS) 용역을 보내는 암투가 이어진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모아주택을 비판하는 지역주택조합도 실체가 없다. 외부 사람들이 막 들어와 조합원 모집 신고해놓고 ‘알박기’하는 사업이라서 주민들이 안 좋게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개발 방식을 놓고 주민들이 갈등할 가능성 때문에 서울시는 같은 사업지에 모아타운 구역을 중복으로 지정하는 것을 지양하고 있다. 2022년 2월 모아타운 사업지를 지정할 당시, 서울시는 기존에 개발이 추진 중인 곳은 배제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그러나 논란이 불거진 화곡동 421‧424번지나 화곡6동 1133-7번지는 이 규칙을 만들기 전에 후보지에 올라 룰이 적용되지 않았다.

지난 2022년 2월 서울시에서 낸 모아주택 
지난 2022년 2월 서울시가 낸 모아주택 대상지 공모 공고. 당시 서울시는 다른 사업방식으로 개발 중인 곳은 공모에서 제외한다고 밝혔었다. 사진=서울시 고시 갈무리

법의 맹점도 작용했다. 모아타운 및 모아주택 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는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에 관한 특례법’은 재건축‧재개발 등이 이미 추진 중인 곳은 제외하도록 규정하지만, 예외적으로 지역주택조합은 제외 대상에서 빠졌다. 이 때문에 지역주택조합 사업지에 모아타운을 중복 지정해도 불법이 아니라고 서울시는 설명한다.

서울시와 강서구는 모아주택에 대한 주민 및 소유주의 동의 여부조차도 조사하지 않고 구역을 지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화곡동 421‧424번지나 화곡6동 1133-7번지는 2022년 각각 서울시 시범사업과 국토교통부 선도 사업을 통해 모아주택 후보지로 지정됐다. 당시 수요조사에서 당국은 노후도 등을 고려했을 뿐, 주민 의견은 일절 조사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공무원들이 건물이나 도로 등 기반시설이 낡은 정도만 보고 행정 편의적으로 개발을 결정한 셈이다.

강서구 관계자는 “2022년 당시 사업 초기라 주민의견 조사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관련법에도 모아주택 사업지 지정 시 주민 의견을 고려하라는 조항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서울시 관계자는 “이 사업은 주민 동의를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 자치구가 대상지를 발굴해서 모아주택 후보지로 넣은 것이므로 동의율을 조사해야 한다는 의무는 없었다"라며 “다만 2023년 이들 지역을 모아타운 구역으로 심의를 넣을 때는 주민설명회 등을 하긴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모든 자치구에서 이런 식으로 모아주택 후보지 선정 때 주민 의견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양천구는 2022년 목4동을 대상으로 모아주택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해당 지역의 토지 등 소유자 978명 가운데 438명(44%)이 찬성해 과반을 못 채워 포기했다. 종합하면 모아주택은 세부 규정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자치구 주택정책과의 재량에 따라 주민 재산이 휘둘리는 상황이다. 

이에 주민 의견수렴 절차가 보다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아주택은 재건축‧재개발 사업과 달리 ▲정비계획 수립 ▲추진위원회 승인 ▲관리처분계획인가 등 의견수렴 절차를 생략하는데, 이 때문에 소유주들간 개발 방향에 대한 숙의가 부족하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개발 사업은 결국 주민들의 재산이 걸린 일인데 사업지를 무작정 지정하지 말고 재산권을 보다 자유롭게 행사하고 희망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며 “화곡동 사례처럼 개발 방식이 중첩되는 곳은 주민 동의율 등의 기준을 좀더 상향하도록 당국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