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시즌부터 K리그1 FC서울의 사령탑을 맡게 된 김기동 감독. 사진=김성수 스포츠한국 기자
2024시즌부터 K리그1 FC서울의 사령탑을 맡게 된 김기동 감독. 사진=김성수 스포츠한국 기자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세계 정상급 축구리그 중 하나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출신 슈퍼스타도, 이제 막 프로에 발을 디딘 신인도 김기동(52) FC서울 감독 앞에선 평등하다.

자신에게 ‘철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포항을 떠나 ‘수도 구단’ 서울에서 새로운 도전을 선언한 김기동 감독은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선수들을 대한다. 엄격한 감독이면서도,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편견을 제자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참 스승 김기동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스포츠한국은 서울 구단 클럽하우스인 경기도 구리시 GS챔피언스파크에서 김기동 FC서울 감독을 만나 그의 선수 시절 깨달음과 이를 바탕으로 한 지도 철학, 올곧은 도전 정신에 대해 들어봤다.

‘편견과 싸워이긴’ 베테랑…제자들의 미래 펼쳐주는 덕장

김기동 감독은 선수 시절 한국프로축구 통산 501경기를 소화한 ‘레전드’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그의 선수 생활 초기는 막막함으로 가득했다.

“1991년 포항제철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에 연습생으로 입단하면서 프로축구에 발을 내디뎠지만, 선배들의 이름값과 실력에 주눅 들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시대의 감독님들은 경기에 나서는 1군과 그렇지 않은 2군을 별개로 운영해 동기부여를 줘야한다고 생각하시더라. 하지만 아무리 2군 에이스라도 1군에 들어오면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후배들은 선배들과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한 팀이라고 느껴야 더 잘할 수 있다. 서울에서도 과거의 내 경험을 토대로 문화를 바꿔놨다. 어린 동생들이 형들과 밀접하게 지내며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기회가 왔을 때 더 능숙하게 잡을 수 있다.”

선수 생활 내내 편견과 맞서 싸워야 했던 김 감독은 ‘참스승’의 등장으로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당시의 감사함을 잊지 않고, 지도자가 된 지금도 스승에게 배운 것을 관철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기동의 프로선수 초반부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시기를 버티며 ‘사람에게 선입견을 갖지 말자’고 다짐했다. 당시 지도자들은 대인 수비에 초점을 맞춰 키 크고 힘이 센 선수를 좋아했다. 나처럼 키 작고, 빠르지 않은 평범한 선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유공 코끼리(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1995년, 팀에 새로 부임했던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님은 달랐다. 훈련을 통해 선수를 평가하고 각자의 특성을 끌어내준 덕에, 내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지도자로서 그때를 생각하며 선수들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있다.”

린가드도 따르는 ‘빅 보스’ 김기동 “도전 멈춤 없어, 서울과 함께 앞으로”

김기동 감독의 포항 사령탑 시절 별명 중에는 ‘재활 공장장’도 있다. 김승대, 임상협, 신진호 등 베테랑들의 재기를 도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만들었기 때문. 김 감독은 젊은 재능을 발굴하고 노장의 회춘을 도우며 포항을 K리그1 강호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처럼 신묘한 김 감독의 ‘선수 재활 비결’ 역시 선입견을 이겨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김 감독은 1991년 프로에 입단해 2011년 은퇴까지 프로로만 무려 20년을 뛰며 필드 선수 최초의 500경기 출장이라는 대업적까지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20년 넘게 선수생활을 하니, 30대 중반이었던 프로 후반부에는 한 경기만 아쉬운 모습을 보여도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뛰지 못한다’는 시선을 받았다. 선수가 1년 내내 잘할 수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포항에서 노장 선수들을 반등시키고 서울의 고참 '기성용-임상협' 선수와 교감할 수 있는 것도 선수 생활 막바지까지 편견과 맞서는 베테랑의 마음을 먼저 경험했기 때문이다.”

‘재활 공장장’ 김 감독은 올 시즌 국제 업무까지 맡았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과 ‘EPL 명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제시 린가드가 서울 소속으로 K리그에 상륙한 것. 린가드는 공격에서 여전한 실력을 뽐냈지만약 8개월이상 공식 경기에 뛰지 못한 탓에 체력과 경기 감각에 대한 문제와 싸우고 있다.

김 감독은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린가드를 응원하며 처방을 내렸다.

“린가드의 훈련 태도와 동료를 대하는 자세는 매우 훌륭하다. 성격 자체가 좋은 선수다. 요즘에는 나를 ‘보스’라고 부른다. 장난기가 많아 보이지만 축구에 대해서는 한없이 진지하다. 린가드 스스로도 8개월이상 실전 경기를 소화하지 못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훈련이 없는 날에도 보강 운동을 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공격 능력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뛰어나기에, 수비적인 헌신만 더 보여준다면 따뜻해진 날씨와 함께 팀에 큰 힘이 될 것이라 본다.”

김 감독은 지도자가 된 이후에도 편견과의 싸움을 이어가야 했고, 서울로 둥지를 옮기고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편견을 다루는 데 능숙해진 김 감독은 두려움 없이 ‘서울과 함께 전진’을 외쳤다.

“새로운 도전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서울에서의 여정을 선택했다. 포항 감독 당시 ‘김기동은 좋은 감독이지만 우승을 못한다’고 하길래 FA컵 트로피를 가져왔다. 그런데 서울에 오니 ‘김기동은 포항에 있었으니 잘된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선입견에 굴복할 생각이 없기에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경쟁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 끝이다. 원하는 결과를 서울과 함께 얻어낸다면 또 하나의 큰 성장을 이루는 나 자신과 FC서울을 발견하지 않을까.”


김성수 스포츠한국 기자 holywater@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