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협조 끌어내도 20조원 이상 새로 만들어야 할 듯
'동반 성장·공생' 명분으로 기업 참여형 기금 방안에도 관심

[주간한국 김병수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지연되면서 총재가 없는 상태에서도 금리를 올렸다. 이로써 약 8개월 사이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0.5%에서 1.50%로 1.0%포인트나 뛰었다. 

윤석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일정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다음 달 초 정부안을 확정하고 새 정부 출범 직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지명된 추경호(秋慶鎬) 후보자로선 큰 부담이다. 전 세계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빠지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세 차례의 빅 스텝(한 번에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입에 올리고 있다. 정부로선 국채를 발행해 돈을 만드는 게 가장 쉽다. 그러나 이런 금리 상승기에 국채 발행을 늘리는 건 물가와 재정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 걱정이다.

◇총동원령 내린 추경호, 협조 수위 조절하는 이창용

운 좋게도 추 후보자가 만들어야 할 돈이 50조원에서 33조1000억원으로 확 줄어드는 분위기다. 올해 이미 집행을 승인한 16조9000억원(1차 추경)을 포함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대규모 추경에 기재부의 부정적 기류가 심상치 않아서다. 기재부는 "그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서도 한 번에 최대 20조~30조원대 추경을 했던 것은, 그 정도가 시장이 감내할 최대 수준이어서"라고 설명한다. 국민의힘의 합의 찬성으로 추경안을 승인했으니, 딱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국채 발행은 이창용 후보자의 절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한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시장 금리 상승이라는 충격을 완화할 묘수는 없다.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한은이 다시 되사주면서 시장 충격을 서서히 줄일 수밖에 없다. 한은이 사는 물량도 무한대는 아니다. 여러 요인을 고려해 감내할 수 있는 규모에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대략 시장에선 10조원 안팎이지 않을까 추정한다. 정확한 규모는 한은과 기재부만 알 뿐이다. 이들이 협조 금액을 밝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부의 발행 물량을 바로 되살 가능성도 작다. 한은이 시장에서 발행과 동시에 사들이면 시장 금리에 통화 당국이 개입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통화 당국이 시장 금리를 가이드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것을 피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의 국채 인수에 따른 시장 금리 왜곡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좋지 않은 시그널을 준다. 시장 금리를 직접 관리하고픈 유혹은 있겠으나, 금리자유화를 표방한 나라의 통화 당국으로선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한두 달 또는 분기별로 풀린 돈을 서서히 거둬드릴 가능성이 크다.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처럼 조건을 걸어놓고 마지막 보루 역할에 치중한다는 의미다. 그나마 이것이 이창용이 추경호를 도와주는 유일한 방안이다.

◇ 마른 수건 더 짜야 할 추경호

전체회의 참석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서울=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첫 경제부총리 후보로 지명된 추경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간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자리하고 있다.
전체회의 참석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서울=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첫 경제부총리 후보로 지명된 추경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간사가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자리하고 있다.

추 후보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마른 수건 짜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기재부에 강력한 세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예산의 50% 정도인 재량 지출 300조원에서 5~10%의 구조조정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말이 5~10%이지, 이 규모가 생각처럼 될지는 가 봐야 한다. 재량 지출은 행정부와 의회가 재량권을 가지고 예산을 편성•심사할 수 있는 지출이다. 여소야대 국회인 데다, 이미 선거 과정에서 여야 모두 질러놓은 선심 공약들이 널려 있다.

당연히 여야 국회의원의 압박을 견뎌내야 한다. 지난 11일 포항 영일만 대교 건설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현황 브리핑을 들은 뒤 "(예산이) 4000억원이 더 드는구나"라며 "성사가 안 되면 추경호 장관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공약 이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 한마디가 추 후보자의 험난한 세출 구조조정 과정을 예고한다.

추 후보자가 당장 끌어올 돈이 없는 건 아니다. 현재 기재부에 주어진 예산은 일반회계 세계잉여금(지난해 쓰고 남은 세입) 3조3000억원과 한은 결산 잉여금 1조5000억원 등 총 4조8000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번에 다 털어 쓰고 곳간을 비워둘 수는 없다. 이번 추경이 올해의 마지막인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해서다.

특별회계도 2조5000억원 정도 남았지만, 이는 따로 쓸 용처가 있어 활용하기 쉽지 않다. 쓰는 순간 민간 기업으로 치면, 분식회계 혐의를 받을 사안이다.

◇기업에 손 벌리고 특별 기금 조성에 나설지도 관심

인수위와 기재부는 이렇게 자금 마련이 여의찮은 점을 고려해 직접적인 손실보상만이 아닌 대출과 보증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시중에 직접 돈을 풀어 물가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이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러나 이미 국민 전체가 쏠쏠한 '현금 맛'을 본 상황에서 갚을 돈이 늘어나는 대출과 보증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 기금 조성 방안이 조심스럽게 부상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윤 당선인의 공약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소상공인 금융지원 및 긴급구제 채무 재조정을 위한 특별 기금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이런 방안을 활용했다. 김대중 정부에선 부실채권 정리기금, 노무현 정부에선 한마음금융과 희망모아유동화, 이명박 정부에선 신용회복기금, 박근혜 정부에선 국민행복기금 등이 있었다. 빚으로 버텨온 소상공인이 재기 불능 상태에 빠져 잠재 부실이 한꺼번에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이런 배드뱅크는 미래의 잠재 부실을 예방하는 목적이 강하다. 당장 기업 또는 가계부채 위험이 크진 않지만, 경기회복이 지연되거나 취약계층의 부담이 빠르게 늘 때 위험 대비용 수단으로 많이 활용했다. 그동안 배드뱅크 방식은 정부와 민간의 공동 참여 방식이 적지 않았다. 은행이 많이 참여하긴 했으나, 기업들도 여러 형태로 참여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대기업의 경영성과는 나쁘지 않다. 이번 기회에 조금은 더 여유 있는 기업들의 '동반 성장과 공생'을 명분으로 거액의 기금을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새 정부가 출범부터 기업에 손을 벌려야 한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과 추 후보자가 풀어야 할 과제다.


김병수 기자 bskim@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