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인플레와 전쟁…바이든마저 파월 만나 대책회의
5월 물가 5.4%…발등의 불 尹 정부 "세금 깎아서라도…"
秋, 대국민 읍소 후 기업 만나 법인세·상속세제 개편 시사
집값 급등으로 정권 잡은 尹 정부…물가 못 잡으면 같은 신세

[주간한국 김병수 기자]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으로 난리다. 우리나라도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 선을 뚫고 근 14년 만의 최고치인 5.4%까지 치솟았다. 통계청은 지난 3일 "5%대 물가 상승률은 기름 등 공업제품, 외식 등 개인 서비스가 견인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물가 수치는 집값과 관련한 항목의 반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낮게 보이는 착시 논란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전 세계가 물가 상승률 8%를 찍었다. 미국은 지난 3월 40년 만에 최고라는 8.5%(전년 대비) 이후 4월에도 8.3%를 기록했다. 유로존 19개국의 5월 물가 상승률도 8.1%다. 독일의 5월 물가 상승률도 전년 대비 7.9%로 50년 만에 최고를 찍었다. 미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지난달 31일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만나 물가를 잡는 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했다. 이 자리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배석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다양하게 추정하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해 2월 "가장 큰 위험은 너무 크게 가는 게 아니라 너무 작게 가는 것"이라고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코로나19 보조금 지급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3월 1조9000억달러(약 2350조원)의 코로나19 구호자금에 서명했고, 미국인 수백만명에게 1400달러(약 170만원)씩 현금을 뿌렸다.

◇ 정권 잡고 나서 발등에 떨어진 불 확인한 尹 정부

지난 3월 우리 대통령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현금성 돈 뿌리기 공약을 남발하며 매표에 나섰다. 그나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거치며 인플레이션의 위기를 감지한 듯하다. 지난달 30일 정부는 6.1 지방선거를 이틀 앞두고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 민생 안정 10대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급하게 대책을 내놨다. 수입 식용유·밀가루 등에 붙는 관세를 면제하는 방식으로 먹거리의 원가 부담을 줄여 밥상 물가를 잡겠다는 것이 요지다. 정부가 세금을 덜 받고 밥상 물가를 낮춰준다니 고마운 일이지만, 실제 효과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낮아질 물가 상승률 수치는 0.1% 정도라고 했다.

정부는 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원가 상승분을 줄이기 위해 긴급히 경제 단체장들도 소집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첫 경제단체장 간담회에서 "각 부문에서의 경쟁적인 가격 및 임금 인상은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기업이 가능한 범위에서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 상승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해달라"고 주문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이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요인을 적정한 수준에서 분담하는 자율·상생·협력의 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의 난제를 풀어가는 데 힘을 모아달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법인세와 가업 상속·기업 승계 관련 세제 개편 등을 통해 기업 주도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물가 상승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해 협조하면 상속과 기업 승계 관련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얘기다.

그동안에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기업에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한 것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상속세·기업 승계 세제 개편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기업들이 실제로 관심을 가질만한 당근책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급했다는 얘기도 된다. 기업들이 정부의 이 주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전방위로 나서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때 강조했던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 활동 보장도 한발 후퇴할 여지를 남겼다.

◇ 이창용 어깨에 올라타려는 0.5%p 빅스텝

물가 상승은 곧 세금 인상이라는 말이 있다. 세금을 올렸거나 물가 상승을 제어하지 못한 정부가 정권을 유지한 사례는 거의 없다. 지난 5월 8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호주 총선도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정쟁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여당에 악재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지난 3월 물가상승률이 5.1%까지 치솟으며 200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주택 가격까지 폭등해 정부에 불만이 커졌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은 더 심각하다. 스리랑카는 4월 물가가 무려 30% 폭등했다. 주요 산업인 관광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탓에 석유, 식품 등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시위대가 정치인의 집에 불을 지르고 박물관을 파괴하며 정권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이란에서도 식품 가격이 폭등해 시위가 일어났다. 정부가 수입 밀 보조금을 삭감해 밀가루를 원료로 한 주요 식품 가격이 300%나 치솟은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집값 급등으로 정권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윤 정부도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제 우리 한국은행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물가 관리 제1 주체는 한국은행이다. 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재원 마련 과정에서도 예상과 달리 한은은 빠졌다. 돈 풀기에 동원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현재로선 이창용 총재가 거부했는지 여부는 알기 어렵다. 어쨌든 물가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한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건만은 분명하다.

한국은행 국장급들까지 나서 적극적으로 중앙은행의 생각을 전하고 있는 점도 달라진 분위기다.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지난달 31일 한은 홈페이지에 공개한 '2022년 5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배경' 제하의 글을 통해 "숙제를 미루면 숙제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유를 들며 "통화정책을 물가에 더 중점을 두고 운용할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 제때 정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0일(미국 시간) 소시에테제네랄(SG)은 한국은행이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평가절하)이 인플레이션 기대치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해 다가오는 금융통화위원회(7월 13일)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올리는 '빅스텝'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병수 기자 bskim@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