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 반환 25주년을 맞는 홍콩의 거리에 걸린 중국 국기와 홍콩 깃발.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권 반환 25주년을 맞는 홍콩의 거리에 걸린 중국 국기와 홍콩 깃발. (사진=연합뉴스 제공)

893일 만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3년 만에 처음 중국 본토를 벗어났다. 방문 대상은 홍콩이었다.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 행사 참석 차원의 행보이지만 이면에는 의미가 상당하다는 평가다. 3연임을 앞둔 시주석은 향후 본격적인 해외 순방을 통해 서방 민주 진영을 대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경쟁도 불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1일 열린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하루 전인 지난달30일 오후 홍콩에 도착했다. 

시 주석의 홍콩 방문은 앞서 2017년에 이어 5년만의 일이다. 시 주석의 홍콩 방문은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이어졌지만 공식 발표는 도착 당일에서야 이뤄졌다. 삼엄한 경비가 펼치진 가운데 시 주석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려는 듯 홍콩에서 잠을 자지는 않았다. 숙박은 중국 영토인 선전에서 했고 다시 홍콩으로 이동해 주권반환 기념식에 참석한 뒤 베이징으로 돌아갔다.

서방 언론들은 시 주석이 홍콩의 코로나19 상황이 다시 악화하는 중에도 방문을 강행했다는데 주목했다. 서방의 압박에 맞서 본격적으로 내치와 외치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는 증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시 주석은 2020년 1월 이후 중국을 벗어나지 않았다. 시 주석은 코로나19를 핑계로 아직 바이든 대통령과도 만나지 않았다. 올해 하반기 미·중 간의 본격적인 체제 경쟁 차원의 정상외교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 주석의 홍콩 방문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 국가 진영에 대한 경고로도 볼 수 있다. 미국 등 서방 진영은 시 주석이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유지 약속을 무력화하고 홍콩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해 왔다. 

시 주석도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홍콩도착 후 "일국양제는 강력한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좋은 제도"라고 규정하고 “조금도 흔들림 없이 일국양제를 견지한다면 홍콩의 미래는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홍콩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더욱 새로운 공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를 ‘비바람’이라고 표현하면서 "비바람을 겪은 후 홍콩은 다시 태어났고, 왕성한 생기를 띠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시 주석은 심지어 홍콩이 장애물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으며 잿더미에서 일어났다는 평가도 했다. 

홍콩의 일국양제가 무너졌으며 중국 본토처럼 전제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서방의 강력한 비판을 정면으로 부인한 셈이다. 

2020년 6월 홍콩국가보안법 제정, 2021년 선거제 전면 개편과 친중 진영의 입법회 의석 싹쓸이에 이어 지난 5월 치러진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중국의 후원을 업은 존 리 전 정무부총리가 사실상 만장일치로 당선한 사례는 홍콩이 더 이상 민주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시 주석의 방문 시 환영 나온 시민들이 똑같은 박자로 오성홍기를 흔드는 모습은 향후 홍콩이 중국처럼 달라질 것임을 보여주는 증표였다.

시 주석의 행보에 미국도 즉각 응수에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은 "홍콩과 베이징 당국이 민주적 참여와 근본적 자유, 독립적인 언론을 보지 않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불만을 표했다.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홍콩 사람들과 연대하겠다"면서 “중국의 뜻대로 홍콩이 흘러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에이드리언 왓슨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도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홍콩 민주주의 제도의 해체, 사법부에 대한 전례 없는 압력, 학문과 문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억압, 수십 개 인권 단체와 언론사의 해산"이라고 비판했다.

시 주석의 홍콩 방문은 마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참석해 반중 연대를 모색한 상황과도 맞물린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하는 반중 연대에 밀리지 않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로 응수한 것이다.

시 주석의 홍콩 방문은 향후 미·중 정상회담이나 정상간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고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NATO 정상회담 기간 중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향후 몇 주 내에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리번 보좌관의 발언은 두 정상의 만남을 염두에 둔 발언이지만 대면 회동일지, 화상 회동일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7월 중 화상 통화나 전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미 고위 당국자의 설명이다. 지난달 초 설리번 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이 만난 것도 정상회담 성사와 연계해 볼 수 있다.

시 주석과 바이든 대통령은 2인자 시절 친목을 다졌지만 지금은 다르다. 양국 경쟁 관계가 치열해지며 글로벌 리더십을 잡기 위한 치열한 다툼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 여파로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두 정상은 화상으로만 만나고 전화통화를 했지만 대면 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첫 만남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인 이후 양국간 고위 관료 회담도 조금씩 진전해왔다. 

마침 오는 7일 블링컨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겸 국무위원이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 회의를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다. 

두 정상이 곧 대면할 가능성은 낮다. 미 고위 관계자는 “빠르면 7월 중 두 정상이 통화나 화상 회담을 할 수 있지만 대면 회담은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후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의 연임은 오는 가을 열릴 20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확정된다. 오는 11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다자 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상이 만날 수 있는 계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G20 정상회의 참석 의사를 밝히고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치열한 미·중·러 정상들의 외교 경쟁이 예상된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