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특검, 국정조사, 국정감사, 진상규명단으로 전방위로 김건희 저격”
“김건희 여사를 윤석열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로 판단하고 집중 타격”
“그동안 김 여사 관련 불찰에 대해선 성찰과 엄격한 자기관리 필요”
​​​​​​​“침소봉대 통한 ‘악녀 만들기’ 전략은 증오의 정치 심화시켜”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김건희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와 의원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김건희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김건희 특검법’을 지난 7일 발의했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진즉에 ‘김건희 특검법’을 먼저 발의했지만, 당 차원의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소환 통보가 있자 민주당은 특검법을 당론 발의하기로 급선회했다.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특검은 전례가 없는 일이기에, 민주당이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여사에 대한 여러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해 특검에는 신중하던 민주당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추석 연휴 직전에 입장을 바꿔 특검법을 발의한 것은 이재명 후보 소환 얘기가 추석 밥상에 오를 것에 대한 맞불용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아가 이 대표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민주당 또한 윤석열 정부가 가장 곤혹스러워 할 지점을 공격하겠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의 이재명 대표 소환 통보를 전하던 김현지 보좌관의 “전쟁입니다”라는 문자의 의미가 이런 것이었을지 모른다.

‘김건희 특검법’이 초강수라는 이유는 단지 그 대상이 대통령 배우자라는 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검법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민주당이 김 여사에 대한 특검 수사를 얼마나 강도 높게 설계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다. 먼저 수사 범위가 대단히 광범위하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등을 비롯한 ‘주가조작 의혹’, 시간강사·겸임교원 지원 시 고의적·상습적으로 학력 및 근무 경력을 위조한 이력서를 제출했다는 ‘허위 경력 의혹’,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및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기간 중 전시회 등을 개최하면서 ‘뇌물성 후원을 받았다는 의혹’ 등이 망라되어 있다. 게다가 이 사건들과 관련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도 수사 대상에 포함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김 여사와 관련된 의혹은 모두 수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특검팀 규모도 역대급이다. 민주당 법안에 따르면 특검보 4명, 파견검사 20명, 특별수사관 40명, 파견공무원 40명 등 100여명 이내로 되어 있다. 전체 수사 인력 가운데 3분의 1 이상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파견받게 된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의 ‘최순실 특검’ 105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민주당은 ‘김건희 의혹’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비슷한 차원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이며, 끝장을 보겠다는 민주당의 결기를 읽을 수 있다. 특검 추천도 민주당이 단독으로 하게 되어 있다. 법안은 특검 임명 절차에 대해, ‘국회의장이 대통령에게 1명의 특검을 임명할 것을 서면으로 요청하고, 대통령은 후보자 추천을 자신이 소속하지 않은 교섭단체에 서면으로 의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검 후보자 2명을 추천한다고 하지만, 모두 민주당이 추천한 인물이 된다. 사실상 민주당이 특검을 임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거 ‘내곡동 사저’ 특검을 제외하고는 특정 정당이 특검 추천권을 독점한 사례는 없었다. 민주당의 법안대로 특정 정당이 추천권을 독점한다면,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이 지켜질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민주당 법안의 서슬 퍼런 내용과는 상관없이 ‘김건희 특검’은 막상 성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관문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법사위 소속인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8일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검이 민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하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조 의원은 “이미 문재인 정부 시절에 특검법에 포함된 내용의 대다수를 샅샅이 수사했다는 사실도 성급한 특검법 추진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라며 “문재인 정부 시절의 조사가 정치적 외압이 있었을 리도 없는데 특검을 한다고 전혀 몰랐던 사실이 과연 나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민주당도 제1야당, 국회 다수당으로 여당과 정정당당한 정책 경쟁으로 승부하길 촉구한다”면서 “한 여인의 남편으로 남의 부인을 정치 공격의 좌표로 찍는 행위가 부끄럽고 좀스럽다”고 특검법을 발의한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 의원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던 인물인지라 민주당의 당혹감은 클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조 의원을 향해 “특검에 동의하지 않으면 역사적 책임”이라며 연일 압박하고 있지만, 민주당을 계속 맞비판하는 조 의원이 소신을 바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조 의원이 반대 입장을 취하는 한 특검법이 법사위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국민의힘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법안을 상정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에, 민주당은 특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생각해왔다. 그러려면 법사위원 18명 중 11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민주당 소속은 10명이라 조 의원이 찬성해줘야만 패스트트랙 지정이 가능한데, 이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이라는 초강경 카드까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김 의장이 발 벗고 나서면서까지 ‘악역’을 맡을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해 보인다. 설혹 민주당이 김 의장을 설득해 천신만고 끝에 특검법을 통과시킨다 한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모든 것은 수포가 되고 만다. 민주당으로선 특검법에 찬성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뜻을 관철하려 하겠지만, 그 처리 과정에 무리함이 발생한다면 여론의 향배 또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민주당으로서는 특검의 성사 여부에 상관없이, ‘김건희 특검’을 둘러싼 논란 자체만으로도 윤석열 정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음에 주목하며 특검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이라는 맞불로 이 대표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나누는 효과적인 무기로 삼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6월 27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지난 6월 27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민주당은 이미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국정조사 요구서도 제출했다. 지난 8월 17일 국회에 제출된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관저 관련 의혹 및 사적 채용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에는 민주당 의원 169명 전원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친민주당계 무소속 양정숙, 김홍걸, 윤미향, 민형배, 박완주 의원 등 모두 175명이 서명했다. 

이 요구서는 용산 대통령실 졸속 이전 결정 경위 및 이전 비용 고의 누락·축소 의혹,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국방부·합참 시설 이전 계획의 타당성 여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공사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와 사적 친분이 있는 업체에 특혜 제공 의혹, 청와대 개방 및 활용과 관련해 전시·공연 등의 관련 법 규정과 공정성 위반 의혹, 대통령실 직원 채용 과정에서 대통령 친척·지인의 아들 등 대통령 부부와의 개인적 친분에 의한 불공정한 사적 채용 의혹 등이 담겼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그동안 민주당이 김 여사를 향해 제기하고 공격했던 의혹들이다.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된 사안들이야 사실은 정책 결정과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이 제기한 사안들은 ‘관저 공사’나 ‘사적 채용’ 의혹같이 대부분 김 여사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이 또한 사실상 ‘김건희 국정조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정조사 요구의 계기가 됐던 ‘관저 공사’ 문제의 경우, 자신이 입주할 곳의 시설공사를 함께 일한 경험이 있어 믿을 만한 업체에 맡긴 일이, 설혹 절차상의 흠결이 있다고 한들, 국정조사까지 할 일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의혹도 과거 역대 청와대들도 모두 대선을 함께 치렀던 사람들을 대거 기용했음을 생각하면, 유독 지금의 대통령실에만 ‘의혹’의 프레임을 씌운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김 여사 주변에서 혹여 비리 행위가 포착된다면 그가 누구든 진상을 밝히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지만,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는 모기 잡자고 몽둥이를 들자는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준비하는 진상규명단까지 구성하기로 했다. “제보센터 등을 운영해서 좀 더 관련 의혹에 대한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철저히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 민주당의 설명이다. 그냥 한번 요구서를 제출한 것이 아니라 국정조사가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한 준비라는 얘기이다. 

한병도 의원을 단장으로 다수의 강성 의원들이 포진한 조사단의 구성을 보면 ‘김건희 의혹’을 샅샅이 파헤치겠다는 민주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특검법을 비롯해 국정조사, 국정감사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국민적 의혹을 숨김없이, 남김없이 밝혀내기 위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표현은 ‘윤석열 정부의 의혹’이라고 했지만, 민주당의 주 관심사는 ‘김건희 의혹’이다. 민주당의 눈에는 ‘김건희 의혹’이 윤석열 정부의 최대 의혹이 된 모습이다.

민주당이 ‘김건희 저격’에 매달리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 여사가 ‘쥴리’였다는 주장이 친민주당 유튜브 방송들에서 제기되었을 때도 민주당은 뒤에서 즐기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SNS에 ‘쥴리 의혹’ 관련 기사를 게시하며 “커튼 뒤에 숨어도 주얼리 시절 목격자가 나타났네요!”라는 글을 올려 마타도어의 유포에 가세했다. 

민주당의 우군인 김어준 씨는 방송에 ‘쥴리’ 목격자를 출연시켜 마타도어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쥴리를 목격했다’고 주장한 안해욱 씨, 역시 ‘쥴리’를 집요하게 주장한 ‘열린공감TV’ 관계자들은 최근 줄줄이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아무리 대선 승부가 절박했어도 민주당이 분명하게 선을 그었어야 할 내용의 것이었다. 그러니 민주당의 팬덤 지지자들은 지금도 포털의 댓글에서 여전히 ‘쥴리’를 외치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당선인 시절이었던 지난 5월 초에 우상호 민주당 의원 등이 제기했던 ‘김건희 강아지’ 폭로도 김 여사에 대한 민주당의 집착이 정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 일이다. 당시 우 의원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서 김건희 씨가 강아지를 안고 새 대통령 관저로 확정된 서울 한남동의 외교부 장관 공관을 방문해 정의용 장관 부인에게 “안을 둘러봐야 하니 나가 있어 달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외교부 장관 부인이 바깥 정원에 나가 계셨고, 그 사이에 그 안을 둘러봤다"면서 "(외교부 장관 부인이) ‘상당히 불쾌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전언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의 얘기만 전해 들으면 김 여사는 예의도 없고 오만불손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러자 친민주당 성향인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하도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런 게 쌓여 나라가 망하는 것”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느닷없는 ‘김건희 강아지’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그런 폭로성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내 판명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는 청와대 이전 TF 측과 협의해 공관 방문 일정을 사전 조율해 왔다”고 밝혔다. 인수위원회 청와대 이전 TF는 “장관 배우자와 아예 마주친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우 의원이나 민주당 측은 더 이상의 반박을 하지 못했다.

외교부 장관 부인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자, 이번에는 최민희 민주당 전 의원이 나서서 ‘강아지를 안고 갔다’는 문제로 초점을 이동해서 공격했다. “공식적인 행동에 강아지를 안고 간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CCTV 공개까지 주장했다. ‘장관 부인’은 사라지고 이제 ‘강아지’가 등장한 것이다. 

우 의원이 전한 대로 외교부 장관 부인을 불쾌하게 만든 일이 없었다면, 사실이 아니었다며 사과하고 매듭지을 일이었다. 그런데 민주당 정치인들과 팬덤 지지자들은 다시 강아지 얘기까지 꺼내며 어떻게든 문제가 있었다는 쪽으로 얘기를 끌고 간다. 이사 갈 집을 둘러보러 가는 일을 ‘공식적’이라 하는 것도 해괴하지만, 그런 사적인 일정에 분리 불안이 있다는 반려견을 건물 앞까지 안고 간 것이 왜 그렇게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쯤 되면 ‘스토커 정치’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김건희 여사를 두둔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 부인에게 심각한 비리 의혹이 있어도 그냥 덮고 가자는 얘기는 더욱 아니다. 불소추 특권은 대통령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부인이라 해도 불법 비리 행위가 있다면 수사도 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 데서 예외일 수 없다. 문제는 지금 민주당이 제기하는 ‘김건희 의혹’이 과연 그만한 수준의 내용을 가진 것인가 하는 데 있다. 

물론 ‘허위 경력’ 문제는 아무리 대통령 부인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옛 시절의 일이었다 해도 김 여사가 무겁게 받아들일 일이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 사과했던 이유도 그런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공인도 아니고 15년도 넘은 사인 시절의 일이고, 이미 공소시효까지 만료된 사안인데 특검까지 해야 할 중대성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특검의 또 한 축인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도 그렇다. 이 의혹을 수사했던 것은 윤석열 정부의 경찰과 검찰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 아래에 있는 김오수 검찰총장, 이성윤·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 체제에서 장기간 수사를 했던 것이 이 사건이다. 

당시 ‘친정부 검사’ 소리를 듣던 수사 책임자들이 야당 대선 후보 쪽의 의혹을 일부러 덮어주려 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장기간의 수사에도 범죄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당시 민주당 쪽의 눈치를 보느라 결론을 미루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물론 그동안 김 여사의 여러 불찰이 있었다. 경력 부풀리기 이외에도 자신의 팬클럽과의 교류 과정에서 물의가 빚어지기도 했다. 대통령 부인의 팬클럽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많으니, 김 여사가 나서서 팬클럽의 해체를 요청하는 것도 논란을 해소하는 길일 수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문제 삼는 야당의 공격을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김 여사도 더욱 조심하고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여야 할 일이다.

국민대의 판단에도 논문 표절 논란이 계속된다면, 김 여사가 학위 논문의 자진 반납을 요청하는 것도 말끔하게 정리하는 방법일 수 있다. 대통령실은 차제에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공석이었던 특별감찰관 임명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정권 주변의 비리를 원천 차단할 제도를 강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꼭 야당의 정치공세 때문이 아니라, 김 여사와 대통령실 스스로 엄격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런 모든 점을 감안해도 ‘악녀 만들기’의 정치는 증오와 저주의 정치라는 감옥에 우리를 가둬 버리게 된다. 가십성으로 얘기하고 지나갈 법한 사소한 문제들까지 민주당의 눈에만 들어오면 특검을 하고 국정조사를 해야 할 엄청난 비리 의혹으로 키워진다. 사안마다 침소봉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상대를 악마로 만드는 정치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추석민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장인 박범계 의원이 지난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추석민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18세기 프랑스혁명 당시 혁명 세력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8살짜리 아들과 상간했다는 혐의를 날조해 민중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에는 프랑스혁명 당시 재판에 넘겨진 왕비를 ‘악녀’로 만드는 과정이 소개돼 있다. 

당시 심문을 맡은 위원회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여덟 살 반 된 제 자식을 성적으로 유혹했던 색정광으로 몰고 간다. 그 이전에 아이는 ’자위’ 행위를 하다가 들킨 적이 있는데, 이러한 악습을 누구한테서 배웠는가를 추궁하는 질문에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어머니와 고모가 자기를 그런 악습에 물들게 했다고 임기응변으로 대답한 적이 있었다. 

아홉 살도 되지 않은 소년의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이성적인 인간, 정상적인 시대라면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지만, 당시의 혁명적 상황에서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츠바이크의 설명이다. 혁명의 성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왕비는 반드시 기요틴 위에서 처형당해야만 하는 인물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왕비를 겨냥했던 당시의 선동들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진실과 정치가 한 지붕 밑에 사는 일은 드문 법이고, 선동을 목적으로 어떤 인물을 그릴 때는 정의란 별로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요틴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 어떤 비방도 불사했다. 모든 악덕, 모든 도덕적인 타락, 온갖 종류의 풍자가 각종 신문, 팸플릿, 서적을 통해서 마구 이 오스트리아의 창부에게로 전가됐다.”

프랑스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소문은 대부분 과장된 것이었다.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는 <여혐의 희생자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치와 외교상의 실패, 재정 파탄은 그녀의 책임이 아니었다. 프랑스 국가재정이 적자에 허덕인 것도 왕비의 과실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의 고통이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증오의 대상을 색출해야만 했다. 그 대상이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한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일은 우리 정치에서도 흔히 보는 일이 됐다. 민주당이 대선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김건희 저격’에 올인하다시피 하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를 흔드는 가장 약한 고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상의 효과적인 공격 무기가 없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민주당이 정치의 본령에서 벗어나 대통령 부인의 장신구나 강아지까지도 시시콜콜히 의혹으로 키우는 것도 그런 정치적 효과를 노린 이유일 것이다.

민주당은 다음 달 시작하는 국정감사에서도 ‘김건희 때리기’에 당력을 모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검법, 국정조사 요구, 국정감사, 그리고 진상규명단 활동에 이르는 전방위적인 공격으로 대통령 부인을 사면초가로 몰아넣으려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의 고민정 최고위원은 “(해외순방에) 꽤 많은 예산이 소모된다”면서 “김건희 여사도 같이 가시던데 왜 꼭 같이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비판에 나섰다. 

아무리 김건희가 미워도,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역할을 송두리째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피라미드 관광’이며 ‘옷값’ 논란 같은 김정숙 여사의 해외 순방 관련 논란들을 벌써 다 잊은 모양이다. 아무리 극한 대결의 정치여도 정치에는 금도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런 것에 대한 개념 자체가 사라졌다. 한 시절 민주주의를 선도했던 민주당의 역사에서, 이렇게 정치를 한 적이 있었는가를 묻게 되는 시간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