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자간담회서 "물가가 더 걱정…금리 인상 속도는 데이터가 보고 결정"
전 세계 성장 급격 둔화로 환율 요동…"환율을 타깃으로 금리 결정 안 해"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가 모두 우려되지만, 지금까지는 전반적으로 물가가 더 걱정스럽다." 

지난달 25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3~4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결정을 중요한 변수로 꼽았다. 그는 "(연준이) 0.5%포인트(p) 인상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거나 그 이상(0.75%p 인상)이 되면 자본 유출이라든가 환율 움직임을 봐야 할 것 같다"고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상견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4.25 [한국은행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상견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4.25 [한국은행 제공]

이 총재의 금리 인상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인사청문회 당시엔 금리 인상을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보면서도, 애써 성장의 문제를 의식적으로 입에 올리는 인상을 줬다. 이 총재는 당시에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를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더라도 감내해야 한다"는 말로, 성장과 금리 인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다. 성장에 노이즈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금리 인상하고자 한다는 취지로 들렸다.

그러나 이날 기자들과 만남에선 다시 반보(半步) 왼쪽으로 움직인 듯한 인상을 풍겼다.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이다. 인사청문회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의 금리 인상 강도를 빅스텝(0.5%p)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국제금융시장에선 그 이후엔 자이언트스텝(0.75%p)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선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후 6월엔 자이언트스텝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선물 거래 참가자들은 오는 5월 미국의 기준금리가 기존의 연 0.25~0.50%에서 0.75~1.00%로 0.50%p 오를 가능성을 94.3%로 예상했다. 뒤이어 열리는 6월 회의에선 연 1.50~1.75%로 오를 가능성이 75.8%에 달했다.

우리나라 물가 통계에 허점이 있어 실제 물가가 통계보다 훨씬 높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이창용 총재에겐 압박도 커졌다. 게다가 전 세계의 경기 둔화 요소가 계속 추가되면서 우리나라의 경기 둔화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미 중국에 이어 미국도 무너졌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율 -1.4%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6개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세를 이어가던 미국 경제가 2020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한 것이다.

이 총재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5월 FOMC와 우리나라 금통위 사이에 시차가 꽤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FOMC는 우리 시간으로 5월 5일 새벽인데, 금통위는 5월 26일이다. 미국이 0.5%p 금리를 올린다는 전제하에, 국제금융시장의 변화를 진단할 시간이 충분해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 일부 지역의 코로나 봉쇄에 따른 경기 둔화 충격을 분석할 시간은 있다. 이 총재가 기자간담회에서 "통화 정책 정상화 기조가 계속되겠지만, 금리 인상 속도는 데이터가 나오는 것을 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이유다. 

어쨌든 전 세계 성장이 멈추면서 달러/원 환율도 연일 급등해 지난달 28일 달러당 1270원 선을 넘어섰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졌던 2020년 3월 19일(1285.7원·종가 기준) 이후 2년 1개월 만에 처음이다. 29일엔 16.60원 하락한 1,255.90원에 거래를 마쳤다.

다만, 이 총재는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로 환율을 정책 변수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내놨다. 그는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시장 변수이고, 그래서 급격하게 쏠림 현상이 있거나 변화가 있을 때 조정 역할은 할 수 있고,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보고 있지만, 환율을 타깃으로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병수 기자 bskim@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