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빅 스텝 가능성 부인 후 美 6월 소비자물가 9.1% 발표에 금융시장 당황
9%대 물가 예상한 발언인지 설왕설래…원화 환율이 버텨주는지가 관건 될 듯
19일 방한하는 옐런 미 재무장관과 외환시장 안정 방안 논의 여부 최대 관심

[주간한국 김병수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겐 정말 긴 밤(13일)이었을 것 같다." (14일 금융시장 한 관계자)

지난 13일.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빅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미국이 이미 자이언트 스텝(0.75%p)을 밟은 상황이어서 그보단 낫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기침하면 우리나라는 독감'이라는 말도 있다. 그 충격이 비교할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빅 스텝을 단행한 그날, 이창용 총재는 어느 때보다 단호한 어조로 '경기 방어'에 대한 의중을 내비쳤다. 연속 빅 스텝 가능성을 부인한 데 이어 다음 금융통화위원회에선 "0.25%p씩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까지 했다. 한은 총재가 이처럼 선명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를 준 적은 없다.

기자간담회 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07.13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기자간담회 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07.13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그렇게 연속 빅 스텝 가능성에 자물쇠를 걸어 채웠는데, 같은 날 밤 미국 노동부는 6월 소비자물가(CPI)가 전년 동월보다 9.1% 올랐다고 발표했다. 전달 8.6%보다 상승 폭이 커진 것은 물론 1981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경신했다. 금융시장의 컨센서스(consensus)는 8.8%였다.

이제 미국은 울트라 스텝(1.0%p 인상)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13일(현지시간) 연준의 통화 정책을 예측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현재 1.50~1.75% 수준인 미 금리가 이달 1.0%p 오를 가능성을 약 80%로 예상했다. 6월 CPI가 발표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1.0%p 인상 가능성은 7.6%에 그쳤었다.

◇ 돌변에 상황에 이창용 발언 의도 파악 분주

밤사이 상황이 돌변하자 금융시장도 혼란에 빠졌다. 무엇보다 이 총재의 발언 배경과 의도를 추론하는 데 주력했다. 이 총재의 선명한 경기 방어 발언이 미국의 9%대 CPI를 예상하고 한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해석은 180도 달라진다.

9%대를 예상했다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 경기가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8%대를 보면서 그렇게 발언했다면, 그동안의 금리 인상으로 서서히 물가 상승의 끝이 보이니 이젠 경기를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의도로 인정할 수 있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의 해석은 엇갈린다. 다수는 8%대 컨센서스가 절대다수였기에 한은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이날 이 총재의 발언은 예상 불발에 따라 중앙은행의 가이던스가 달라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중앙은행의 신뢰 추락이다. 중앙은행의 신뢰가 낮아지면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의심이 의심을 낳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컨센서스를 너무 신뢰해 한국은행 총재가 퇴로를 너무 닫아버린 게 아니냐는 촌평이 나온다. 최종 물가 관리자로서 경기 침체 우려를 하더라도 좀 더 유연한 화법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당사국인 미국조차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어쨌든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을 지난 이 총재로선, 8%대 물가를 자신하면서 내놓은 발언이라면 적잖이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것 같다고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전한다.

◇ 이 총재가 자신의 발언을 지키려면…

금융시장은 이제, 이 총재가 자신의 발언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에 주목한다. 미국이 울트라 스텝을 밟는 경우에도 우리나라가 금리를 0.25%p만 올릴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많은 금융 전문가들은 미국이 금리를 1%p 올리는데 우리나라가 0.25%p만으로 대응하기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몇몇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주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9%대 물가를 보기는 했으나, 이것이 정점이라는 기대가 늘고 있다는 점을 유심히 본다. 물가 충격에 미 국채 단기물은 금리가 오르고 있으나, 5년 이상 장기물은 금리가 내려가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흐름은 아시아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10년물 금리는 반등을 시도하다 소폭 하락했고, 30년물 금리는 내림세를 이어갔다.

미국의 6월 물가에 결정타였던 석유 가격 상승이 7월 들어선 주춤하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한다. 게다가 바이든 미 대통령의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방문(현지시간 13~16일) 일정에 들어갔다. 핵심은 사우디의 석유 증산 협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를 설득하겠지만, 결과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미국 재무장관과 대화 나누는 추경호 부총리(서울=연합뉴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 중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발리 누사두아 컨벤션센터(BNDCC)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환담을 하고 있다. 2022.7.15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재무장관과 대화 나누는 추경호 부총리(서울=연합뉴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 중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발리 누사두아 컨벤션센터(BNDCC)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환담을 하고 있다. 2022.7.15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총재로선 사우디의 증산 문제가 어떻게 되든, 원화 환율만 견뎌준다면 0.25%p 금리 인상으로 버틸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미국이 자이언트 또는 울트라 스텝으로 금리를 올리면 우리 원화는 더 빠르게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382억 8000만달러(한국은행 발표)로 전월 말보다 94억3000만달러 줄었다. 2008년 11월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최대 감소 폭이다. 금융시장에선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화 매도 개입을 했기 때문으로 본다.

미국 물가가 9% 진입 후 수개월간 9% 초반대를 유지한다면 물가 정점론에 힘이 실리며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희망이 생긴다. 바이든이 사우디의 원유 증산을 설득해내는 것까지 더해진다면 울트라 스텝이라도 우리는 0.25%p 인상으로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환율 방어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오는 19~20일로 예정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옐런 장관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이창용 한은 총재는 모두 앞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15~16일·인도네시아 발리)에 참석하지만, 별도 면담은 잡지 못했다. 대신 오는 19일 방한해 만난다.

지난 14일 대통령실은 옐런 장관 방한 때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를 하느냐는 질문에 "어떤 이슈를 다루느냐에 대해선 양국 간 논의하고 있다"고만 했다. 이 총재는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추경호 부총리와 옐런 장관의 만남에서 (외환시장 안정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김병수 기자 bskim@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