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경쟁서 기술 초격차 풀 배팅 나선 이재용…경쟁자 TSMC 넘어선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좌측부터) 정원철 상무,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가 화성캠퍼스 3나노 양산라인에서 3나노 웨이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좌측부터) 정원철 상무,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가 화성캠퍼스 3나노 양산라인에서 3나노 웨이퍼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며 기술 초격차를 강조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나노 파운드리 양산으로 변화의 포문을 열었다. 파운드리 업계 진출 이후 처음으로 1위인 TSMC 보다 한 단계 높은 선단 기술을 앞세워 공략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시장 점유율의 열세를 기술력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관건은 새로운 기술의 안정화 여부다. 품질 관리에 성공한다면 앞선 스펙으로 경쟁자를 압도하겠지만 불량품을 양산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3나노 파운드리 선점한 삼성, 세계 1위 TSMC 앞서 

지난달 30일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nm)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초도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히며 차세대 파운드리 경쟁의 새 국면을 열어젖혔다. 반도체 회로 선폭을 의미하는 나노 공정은 반도체 제조 공정 가운데 가장 앞선 기술로 평가 받는다. 1나노미터는 10억 분의 1미터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TSMC가 활용해온 4나노 공정에서 한 단계 더 미세화시킨 것이다. 반도체는 회로 선폭이 미세화될수록 반도체 소비전력은 줄이고 속도는 높일 수 있다. 삼성은 이번에 3나노 공정의 고성능 컴퓨팅(HPC, High-Performance Computing)용 시스템 반도체를 초도 생산한 데 이어 앞으로 모바일 시스템온칩(SoC) 등으로도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새로 도입한 기술도 눈길을 끈다. 3나노 공정 파운드리 서비스에서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Gate-All-Around) 기술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핀펫(FinFET)‘ 공정은 트랜지스터의 3개 면에 신호를 전달했는데, GAA는 이보다 한 면 더 많은 4면에 전류를 보내 더욱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트랜지스터 성능 저하를 극복하고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독자적 다중가교채널 트랜지스터(MBCFET) GAA 구조도 적용, 전류가 흐르는 채널의 크기를 다양하게 변경해 전류를 한층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은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업계 최초로 '하이-케이 메탈 게이트’(High-K Metal Gate), 핀펫, 극자외선 등 신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며 빠르게 성장해 왔다”며 “이번에 MBCFET GAA기술을 적용한 3나노 공정의 파운드리 서비스 또한 세계 최초로 제공하게 됐다. 앞으로도 차별화된 기술을 적극 개발하고 공정 성숙도를 빠르게 높이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8년 만에 신규 반도체 R&D 센터 조성…신기술 도입 잰걸음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제공)

최근 삼성전자는 기술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몰두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흥 반도체 사업장 유휴 부지에 신규 반도체 연구개발(R&D)센터를 짓는 공사에 착수했다. 2014년 화성캠퍼스 디바이스 솔루션 리서치(DSR) 이후 삼성이 8년 만에 조성하는 신규 반도체 연구 기지다.   

파운드리 경쟁에서 삼성이 업계 기술 선두에 선 것은 2017년 파운드리 사업부 출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7나노 때는 TSMC가 2018년 도입하고 삼성이 2019년 도입해 1년 뒤쳐졌다. 5나노는 두 회사가 모두 2020년에 도입했지만 TSMC는 상반기, 삼성전자는 하반기에 도입해 반기 늦었다. 하지만 3나노는 TSMC의 경우 하반기 양산 예정이라 삼성이 추월하게 됐다.  

삼성은 1983년 반도체 사업진출 후 10년 만인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해 업계에서 가장 먼저 선단 제품을 선보여 이듬해인 1993년 메모리시장 글로벌 1위에 올라섰다. 

메모리 양산 때는 세계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하지만 파운드리 부문은 사업부 출범 후 6년 만인 올해 3나노 공정의 양산이 가능했다. 파운드리 부문의 선단 제품 출시까지 기간을 과거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단축한 셈이다. 

파운드리 시장의 경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반도체업계에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매출이 올해부터 발생하며, 오는 2024년부터 5나노 공정 매출을 넘어서고 2025년까지 연평균 85% 성장을 거듭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통상 6개월 단위로 기술표준이 바뀌는 것으로 본다. 변화의 시점에서 선발 주자가 되면 해당 기술의 표준을 선점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이재용, 수율 높이는 극자외선 장비 확보 위해 네덜란드 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벨기에 루벤(Leuven)에 위치한 imec를 방문, 루크 반 덴 호브(Luc Van den hove) imec CEO와 연구개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벨기에 루벤(Leuven)에 위치한 imec를 방문, 루크 반 덴 호브(Luc Van den hove) imec CEO와 연구개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 기술 발전이 궁극적 목표인 시장 점유율 확장으로 이어질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53.6%였고 2위인 삼성전자는 16.3%로 크게 뒤졌다. 

파운드리 부문은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기업들의 일감을 수주해야 한다. 삼성은 지난해 기준 약 100곳인 고객사를 2026년까지 3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새로 도입한 기술이 안정화 되지 못해 수율(생산량 중 합격품 비율)이 낮을 경우 팹리스 기업으로부터 수주를 받기 어렵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율이 60% 이상 돼야 양산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삼성은 아직까지 이번 3나노 공정의 수율이 어느 정도인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3나노는 아직 1세대 공정이어서 수율이 높지 않을 수 있고, 새로 도입한 GAA 기술의 적응 여부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앞서 삼성은 수율 문제로 생산 차질을 빚은 바 있다. 이미 삼성은 4나노 공정 때 자체 개발한 모바일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칩을 양산하면서 수율을 맞추지 못해 갤럭시S22 스마트폰에 탑재하지 못한 바 있다. 또한 7나노에서는 삼성이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그려 넣는 노광 공정에서 EUV을 도입한 반면 TSMC는 EUV를 선택적으로 도입하고 기존의 액침 노광을 활용해 앞서 나가는 계기를 마련한 바 있다. 

3나노 양산에 앞서 유럽 출장에 나선 이 부회장은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EUV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사를 찾았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올해 및 내년 이후 출시 예정인 EUV 장비 도입 계약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TSMC 양사가 보유하고 있는 EUV 노광장비는 각각 20대, 40대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