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 SH공사가 과거 주택 원가 공개 가세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응봉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택 수요자의 알권리 신장을 위해 토지비와 건설비 등을 포함한 분양원가를 공개하는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와 반값아파트 공급을 철학으로 삼은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 전면에 나섰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시장에서 외면 받았던 반값 아파트가 현실화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부동산 가격의 가파른 상승으로 내집 마련의 꿈이 멀어지는 서민을 위해 반값 아파트도 차기 서민 주거 정책 수단으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반값 아파트를 처음 들고 나온 정치인은 1992년 대선 후보로 나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토지임대부 주택 형태의 반값 아파트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했지만 높은 분양가 등으로 정착하지 못했었다.

국토부 청년 원가주택 이어 SH 분양원가 공개 예정

지난달 29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새 정부 공급 모델 중 하나인 청년 원가주택을 언급하며 “(공급 물량이) 미래 세대와 무주택 서민에게 최우선으로 제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장관은 오는 8월 15일 광복절 전까지 구체적인 공급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청년원가주택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발표한 1호 공약이다. 공약집에 따르면 정부는 5년 임기 동안 청년원가주택 30만 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윤곽은 향후 정부 발표에서 드러나겠지만, 무주택 청년들에게 건설원가 수준으로 분양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사들이는 환매 조건부 분양 주택이 본질이다. 

분양 가격을 건설 원가와 이자 비용만으로 산정해 구성택지비와 건설 원가, 사업비, 이윤을 더해 분양가를 결정하는 기존의 공공분양주택과 달리 분양 시 건설원가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점이 특징이다. 정부 계획대로면 물량이 30만호에 육박하는 만큼, 강제적으로 건설 원가 시세가 공개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또한 원가주택은 주택도시기금이 30년 이상 장기 저리로 필요한 자금의 80%까지 지원해 입주자는 건설원가의 20%만 내고 입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공약을 설명하면서 “청년층이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결혼과 출산을 꺼려 인구절벽 우려가 심화하고 있다”며 “주거 문제 완화를 위해 청년층에게 원가로 주택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신원동 내곡지구 내 공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곡지구 6개 단지의 분양 원가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헌동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신원동 내곡지구 내 공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곡지구 6개 단지의 분양 원가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오는 6일 기자설명회를 열고 서울 강서구 마곡동 마곡지구의 분양원가를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김헌동 SH 사장은 지난달 25일 페이스북에 “고덕강일, 송파오금, 강남세곡, 서초내곡 등 강남권 분양원가부터 공개했다. 25평 아파트 건축비 2억 택지비 1.5억 원가합계 3.5억쯤 분양가격 4.5억 이었다”라며 “SH는 약 30% 가구당 1억 수익으로 임대 등 유지한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와 SH는 2011년 이후 공사가 공급한 34개 아파트의 건설 원가 61개와 택지조성 원가 10개 등 총 71개 항목의 분양원가 자료를 공개한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12월 SH는 공사가 2019년 공급한 서울 강동구 고덕강일 4단지 아파트의 분양 원가가 3.3m²당 1134만원이라고 밝혔다. 강일4단지와 이웃해 2020년 12월 분양된 민간 아파트 ‘힐스테이트 리슈빌 강일(힐스테이트)’이 3.3m²당 분양가가 2230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반값 수준인 셈이다. 

SH공사가 전용면적 49㎡ 345세대, 59㎡ 297세대 등 642세대 규모로 공공분양을 한 해당 단지의 총 분양 원가는 1765억800만원이었으며 3.3㎡당 택지 조성 원가는 445만원, 건설 원가는 689만원이었다.  

논란 이어진 분양원가 공개…고분양가 부작용으로 탄력 받아

분양원가 공개제도는 참여정부 시절 도입됐다가 건설업계 등의 반발로 축소됐다. 지난 2004년 2월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서울 마포구 상암7단지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했다. 

분양원가 공개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참여정부 때였는데, 2007년 2월 주택법을 개정하면서 공공주택은 61개, 민간주택은 7개 항목을 공개하게 했다. 이후 MB정권에서 공개 범위가 축소됐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민간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 제도를 폐지했다. 

이후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주택 분양원가 공개항목을 62개로 확대해 현재 분양 원가 공개 대상은 공공주택과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 받는 민간주택뿐이다. 현재는 경기도시공사(GH)와 SH 등 일부 공기업이 분양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원가를 공개할 경우 분양가를 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건설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 건설업계 입장에선 ‘원가’는 사실상 기업의 영업비밀이다보니 원가공개를 강제할 경우 주택사업을 하려는 기업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 이윤 추구가 제한돼 원가 절감 및 주택품질 개선 노력을 저해한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집값 상승과 함께 분양가도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국 곳곳에서 고분양가 논란이 불거진 만큼 분양 원가를 공개해 시장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동안 분양가 측정 지표로 활용됐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제도는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HUG는 2016년 분양보증 리스크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고 적정 가격 수준의 주택공급으로 주택시장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 고분양가 심사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분양가 산정 기준인 주변 아파트 표본을 인위적으로 선정해 재건축·재개발 단지의 조합원들이 분양가 수용을 거부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대표적으로 둔촌 주공 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실패 사례로 손꼽힌다. 분양가가 제한된 데다 건설사가 공사비를 올리면서 시공사업단과 극한 갈등으로 공사까지 멈춰선 상태다. 이에 둔촌주공 조합은 적정 공사비를 다퉈보기 위해 지난 5월 외부 건축업체에 공사비 검증 용역을 신청하기도 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분양 원가 공개에 대한 요구가 있다면 그거에 맞춰서 할 필요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그동안 그렇게 하지 않아 이윤 등이 비공개가 되면서 건설업계 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는데 원가 공개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면 또 다른 장점도 있다”고 했다.

반면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분양자 등이 주변의 아파트 가격과 비교해 고분양냐 아니냐 논란이 불거지곤 하는데, 분양 원가를 공개한다고 그런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같은 지역의 두 아파트 현장에서 터파기를 할 경우, 토사를 버리는 거리만 달라도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건설비는 현장마다 변수가 다양한데 단순 숫자만 대조하는 건 유의미한 분석이 아니므로, 분양 원가 정보는 주택 시장에서 참고 자료 정도로는 활용하고 절대적인 비교 기준으로 사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