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밑까지 차오른 전력수요... 전기 보릿고개 ‘초긴장’ 
전력 수요, 발전 상한 턱밑까지 차올라... 블랙아웃 위기지만 공급 늘릴수록 적자 구조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에서 정전이 발생해 승강기 옆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에서 정전이 발생해 승강기 옆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력 공급 상황이 아슬아슬하다. 무더위에 전력 사용량이 치솟으면서 한국전력의 전기 공급 한도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전력 수요가 절정에 달아오르는 8월은 과부하로 전국이 정전 사태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원자잿값 상승 등 여파로 발전 단가가 부쩍 뛰면서 한전은 전기를 생산할수록 손실을 보는 ‘역마진’에 허덕여 발전량을 더 늘리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몇 년간 조단위 적자로 휘청이던 한전 입장에선 경영난에 전력 대란까지 이중고에 직면하게 됐다. 한전은 자산 매각 등 자구책을 시도하고, 정부는 전력예비율을 높이면서 국민에게 전기를 아껴 쓸 것을 당부했지만, 눈앞에 닥친 전력대란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푹푹 찌는 가마솥더위에 들끓는 전력 수요

전력수급이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이번 주(8월 둘째 주)에 전력 수요가 최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름 휴가철인 7월 말~8월 초 기간을 지나 공장 등 대규모 사업장들이 전력 사용량을 늘릴 시점이고 장마 후 본격적인 무더위로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점을 감안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예상하는 이 기간 최대전력수요는 적게는 9만 1700㎿(메가와트), 많게는 9만 5700㎿이다. 최대전력수요란 하루 중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때의 수요를 말하는데, 지난달 7일에는 9만 2990㎿까지 치솟기도 했다.

최대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칫 한전의 전력 공급 능력을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전의 전력공급 능력은 10만 867㎿ 수준. 여기서 최대전력 수요를 뺀 여분인 ‘공급예비력’은 고작 5200~9200㎿ 남짓이다. 실제로 공급예비력이 5500㎿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정부는 각종 시설물에서 전력 사용의 자제를 요청하는 ‘전력수급 비상경보’를 발령한다. 전력수급 비상경보가 발령된 가장 최근 기록은 9년 전인 지난 2013년 8월이다. 

절기상 입추(立秋)인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평화의공원에서 한 가족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또한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장 최근에 블랙아웃이 발생한 건 11년 전인 2011년 9월 15일이다. 당시 한전은 전력이 달리자 예고 없이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 순환 정전을 실시했고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바 있다.

정부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강감찬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정책과장은 지난 2일 KBS 뉴스에서 “전력 수급을 위해 9.2GW(기가와트) 수준의 추가 예비 자원을 확보했다”며 “비상 상황 시 신규 원전이나 화력발전소를 시험 운전해 전력을 생산하는 등 비상조치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는 7월 4일부터 9월 8일까지 기간을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 기간’으로 지정하고, 전력거래소, 한국전력 등과 함께 ‘전력수급 종합상황실’을 운영한다.

 정부는 가정과 사업장 등의 에너지 절약 노력 및 기업의 직원 휴가 분산을 당부하며 전력 수요 분산을 위한 국민 협조를 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냉방 수요가 집중되는 여름철에 이 같은 당부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올 여름은 더위는 이른바 ‘역대급’으로 손꼽힌다. 지난 7월 상순(1~10일)의 전국 평균기온은 27.1도, 최고기온은 32.0도로, 기상청이 관측망을 전국적으로 확대한 1973년 이후 50년 만에 가장 높았다. 7월 전국 평균기온도 25.9도로 평년(1991~2020년 관측 자료의 평균)보다 1.3도 높았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평년보다 북서쪽으로 확장해 덥고 습한 바람이 한반도에 불어닥친 것이 폭염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달 전국 폭염 일수는 5.8일로 평년보다 1.7일 더 많았다. 열대야 일수 역시 3.8일로 평년보다 1.0일 많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이 기간 전력 수요는 치솟았다. 지난 4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월평균 최대전력은 8만 2333㎿로, 전년동월대비 1.4%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월평균 최대전력이란 한 달 동안 일별 최대전력 합계의 평균값을 의미한다. 이 기간 전력공급 예비율(공급예비력을 최대전력으로 나눈 비율)은 안정적인 공급 수준의 기준인 10%대를 세 차례나 밑돌았다. 

전기 팔수록 손해...역마진 쇼크 못 벗어나는 한전

 지난 2일 오후 한국전력 서울본부 전력수급 상황 현황판 모습. 정부는 올여름 전력 최대 수요 시기를 다음 주로 예상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번주를 무난히 넘기더라도 위기는 계속된다. 전력난의 근본적인 문제는 원자재 값이 오르면서 발전 비용 부담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발전소 가동에 필요한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불거진 에너지 대란을 타개할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역마진’ 상태에 처했다.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 올 때 지불하는 값의 기준이 되는 전력도매가격(SMP·계통한계가격)은 한전이 전력을 판매할 때의 단가를 앞질렀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월별 평균 통합(육지·제주) 전력도매가격은 지난 4월 킬로와트시(㎾h)당 202.11원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5월 140.34원, 6월 129.72원으로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달 다시 151.85원으로 오르고 이달 들어 육지 전력도매가격이 ㎾h당 200.2원(1일 기준)으로 다시 올라 200원대에 재진입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수급 불안이 이 같은 비용 증가를 견인했다. LNG 열량단가는 지난 6월 기가칼로리(Gcal)당 7만7662원에서 지난달 9만1017원으로 17.2% 늘었고, 이달에는 12만7096원으로 다시 39.6%나 뛰었다.

국제유가 등 연료비 인상분이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전력도매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하면 한전의 재무 부담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장기계약으로 들여오는 LNG와 석탄은 4~6개월 시차가 발생한다"며 "연말까지 화석연료 가격 강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내년 상반기까지 관련 영향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4분기 전기료 또 올리면 올해만 15% 인상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전기요금 관련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전기요금 관련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팔수록 손해인 수익구조를 가진 한전에게 이번 여름은 적지 않은 고비다. 무더위 절정을 맞는 지금 시점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전력 수요는 곧 한전의 손실을 의미한다. 이미 일일 최대 전력 수요는 지난달 7일 9만 2990㎿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 적자(5조 8601억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1분기에만 7조 786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한전이 상반기에만 13조에서 14조원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이며, 올 한 해 누적 적자는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다양한 자구책이 나오고는 있지만 이 같은 천문학적 손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우선 한전은 전기요금을 자동이체로 지불할 경우 주어졌던 할인 혜택을 내년 7월부터 전면 폐지한다고 3일 밝혔다. 2023년 7월분 요금부터 자동이체 할인 혜택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다만 2023년 6월 이전에 신규로 자동이체를 신청하는 가구에 한 해 1년간 할인을 적용할 예정이다.

그동안 한전은 매월 예금계좌 자동이체 방식으로 전기요금을 납부하는 고객의 경우, 전기요금의 1%를 최대 1000원 한도 내에서 할인해줬다. 전기요금의 안정적 회수를 위해 지난 2000년 도입한 제도다. 

한전은 지난 7월부터 2023년 6월까지 해당 제도의 할인율을 ‘최대 500원 한도 내에서 0.5% 할인’으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1337만 가구(6월 기준)는 전기요금 청구서에 최대 500원이 더 인상될 예정이었는데, 내년 하반기부터는 이 제도를 아예 폐지하면서 그나마 있던 할인도 끝날 예정이다. 

자산 매각에도 전격 나선다. 한전은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에 대한 보유 지분 65.77% 가운데 14.77%를 내년까지 매각하는 방안을 타진하고 있다. 현재 지분 매각을 맡을 자문회사들을 선정하기 앞서 입찰 제안서를 받은 상태이며 이후 3곳을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결국 블랙아웃과 한전 경영난의 복합적 위기에서 당장 떠오르는 대책은 추가 전기료 인상이다. 정부는 올해 4분기부터 기준연료비를 kWh당 4.9원 추가 인상할 예정이다. 

전기료 인상은 전력 수요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전기료가 워낙 싸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할 때 에너지 효율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에너지 수요 쪽을 효율화해야 탄소중립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기료 인상에 따른 국민의 조세저항이 부담이다. 이미 정부는 지난 2분기에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으로 kWh당 총 6.9원을 올린 데 이어 3분기에는 연료비 조정단가를 5원 더 인상한 바 있다. 4분기 인상까지 단행하면 올해만 최소 15.1% 이상 전기료가 오르게 된다.

고물가 국면에서 전기료 인상은 민생을 악화하는 이중고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월 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대선 주요 환경정책관련 국민여론’ 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기료 인상 반대 응답이 과반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해당 조사에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친환경 에너지원 도입으로 전기료를 인상하는 방안’에 반대가 55.2%를 차지해 동의(44.8%)한다는 의견보다 많았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