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한중수교 30주년 앞둔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반전 노리지만 ‘대략 난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3개월 만에 첫 광복절 경축사를 앞두고 있다. 추락하는 지지율 반전을 위해 고심할 수밖에 없는 윤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취임 후 처음으로 맞는 대국민 연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역대 대통령들은 2월에 취임한 후 6개월 후 광복절 경축사에 공을 들여왔다. 국정운영의 구체적 비전과 국민통합, 한일관계 및 대북관계와 관련한 메시지를 내놓았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광복절 경축사를 ‘제2의 취임사’로 여길 정도다. 

또 오는 24일 한중 수교 30주년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과 달리 중국과 거리를 두는 듯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에서도 한중 외교관계의 방향타를 조정하는 것은 가볍게 넘어갈 이슈가 아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앞에 놓인 한일·한중관계는 온갖 지뢰들이 깔려 있다.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교안보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자칫 국민감정을 건드리거나 상대국을 자극하는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 대응 ‘어정쩡’
대응단 꾸린 민주당 역공 나서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위해 한국 외교부 장관이 일본을 방문한 것은 4년 7개월 만이다.

박 장관은 출국 전 한국 언론사 특파원과 간담회를 열고 “한일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양국 정부의 의지를 확인했다”며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협의체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우리의 노력에 대해 일본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로 인해 발생한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선 한국이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한국 측의 성의 있는 행동과 결론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문제는 박 장관의 방일 이틀 후 일본이 독도 영유권과 원자력 오염수 방류 이슈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2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 주재로 열린 각의에서 올해 방위백서를 채택했다. 백서에는 “일본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쿠릴 4개 섬)와 다케시마(독도)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한다”고 명기했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이에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대리(정무공사)와 방위주재관을 각각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

한편 일본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NRA)는 임시회의를 열고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쌓여가는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기로 했다. 

실질적인 방류를 위해 행동에 나선 정황도 드러났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후쿠시마현 등 지자체가 도쿄전력의 안전 대책에 동의해 터널을 파고 배관을 설치하는 공사를 지난 4일부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해수·수산물 방사능 검사 강화, 일본산 수산물 원산지 추적 강화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대응책으로 보고했다. 그러나 일본이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갔지만, 우리 정부는 기존의 방침인 ‘검사 대응’ 외에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급기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나섰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 저지 대응단 출범식을 열고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오염수가 방사 후 7개월이면 제주 앞바다에 퍼질 것이라고 한다. 수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이 입게 된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모호한 입장으로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후쿠시마 폭발 당시 방사능 유출이 없다고 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바 있다"며 "오염수 방류 결정을 사실상 묵인하고, 일본에 적극적 반대는커녕 상의 시도조차 안 했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환경 주권, 특히 어민 생존권을 위협받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출범식에 참석한 임준택 수협중앙회장은 "수산물 소비 기피 현상이 벌어지면 수산업 붕괴는 자명한 일이다. 이 사안은 우리 국가식량 안보가 위협받는 엄중하고 중대한 문제다. 수산업의 존재를 위협하는 일본 정부의 결정을 강력히 규탄하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고 했다.

윤덕민 대사 “현금화 절차 동결”
일본 입장과 판박이 주장으로 파문

윤덕민 일본 주재 한국대사의 발언도 국민감정의 뇌관을 건드리는 악재로 작용했다. 한일관계 개선과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배상을 위해 일본 기업 압류 자산의 현금화 절차를 동결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윤 대사는 지난 8일 부임 후 첫 특파원 간담회에서 "현금화가 이뤄지면 한일 관계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며 "아마도 우리 기업과 일본 기업 (사이에) 수십조원, 수백조원에 달하는 비즈니스 기회가 날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금화를 막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서 "외교가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 고위 당국자가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 판결 절차를 미루고 외교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기존 일본 정부의 입장과 다를 바가 없었던 탓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윤 대사가 자신의 주장이 정치권의 지지를 받은 것처럼 포장한 듯한 발언이다. 윤 대사는 지난 9일 일본 경제매체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의 초당파적 입장은 같다"라고 주장했다. 현금화를 회피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이 한국 내 여야가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외교부도 윤 대사의 발언을 비호하고 나섰다.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나 "해당 발언은 (가해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가 이뤄지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즉각 윤 대사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반발했다. 조오섭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과 국익을 위해 일해야 할 주일대사는 대한민국 사법주권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와 가해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니 경악스럽다"라며 윤 대사의 사퇴를 촉구했다.

조 대변인은 "외교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을 사실상 방해하는 의견을 내고, 주일대사는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 이행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일본에 편승하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며 "윤석열 정부에게는 대한민국 국민과 사법주권을 지켜달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냐. 윤석열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묻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외교부에서는 '강제징용 문제 관련 민관협의회' 제3차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피해자측 소송대리인은 양금덕·김성주 할머니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특별 현금화 명령 재항고심에 대해 외교부가 판결을 늦춰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에 반발해 이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앞서 외교부는 대법원 상고심 담당 재판부 2곳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지원단과 대리인들은 크게 반발하면서 정부 주도의 민관협의회 참석 불가를 선언했다.

지원단 및 대리인들은 지난 3일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교부의 대법원 의견서 제출 및 전후 사정을 고려할 때 외교부와 피해자 쪽 사이에 신뢰관계가 파탄 났다고 판단한다”며 “피해자 지원단·대리인단은 이후 민관협의회 불참을 통보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99엔’ 연금 지급 사실이 불거졌다. 일본 정부가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한국 돈으로 1000원도 안되는 99엔(약 931원)을 지급해 논란이 된 것이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급된 수당이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당시 화폐가치 그대로 지급됐다는 점이다. 

일본은 1973년 후생연금보험법이 개정된 후 연금을 납입할 때와 수령할 때 화폐가치를 반영해 차액을 보전해야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만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전에도 후생 연금 탈퇴수당 명목으로 2009년과 2014년에 각각 99엔, 199엔을 지급한 바 있다.

근로정신대 시민모임은 '악의적인 모욕'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난 4일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에서 '일본 후생연금 931원 탈퇴수당 송금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지난 4일 오후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과 일한의원연맹 합동 간사회의에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 중의원 의원.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4일 오후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소재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일의원연맹과 일한의원연맹 합동 간사회의에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누카가 후쿠시로 중의원 의원. (사진=연합뉴스 제공)

에토 의원 “일본은 형님뻘” 망언
한일의원연맹 방일에 찬물 끼얹어

이처럼 미묘만 시점에 일본 원로 정치인의 망언이 충격을 주고 있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파벌의 최고 고문인 에토 세이시로(13선) 자민당 의원이 한일관계를 놓고 "일본이 형님뻘"이라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이다. 

특히 이 발언은 한일의원연맹의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왔다. 지난 3일 방일한 한일의원연맹 대표단은 다음 날 일본 측 파트너인 일한의원연맹과 합동간사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에토 의원은 자민당 모임에서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형제국"이라며 "확실히 말하면 일본이 형님뻘"이라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에토 의원은 이 발언의 의미에 대해 기자들에게 "일본은 과거 한국을 식민지로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일본은 한국에 어떤 의미에서는 형님과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에토 의원의 발언은 일본 우익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과 일치한다. 우익이 주창해온 ‘일선동조론’과 맥을 같이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일선동조론은 한일을 형제 관계로 규정하면서 한반도 강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널리 이용됐던 논리를 말한다.

윤호중(더불어민주당)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은 지난 5일 오전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한국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에토 의원의 발언과 관련한 질문에 "대단히 유감스러운 발언을 하셨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과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에토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에토 의원의 발언에 중국도 발끈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기자로부터 에토 세이시로 중의원 의원의 한일관계 관련 발언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자 "일본 일부 정객들이 침략과 식민지배의 불명예스러운 역사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영예로 여긴다"며 “경악했다”라고 밝혔다.

중국이 꺼낸 또 하나의 ‘뇌관’ 사드

한국과 중국 사이에 한 차례 홍역을 겪었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중국이 작심하고 한국 정부가 사드 운영을 제한하기로 했다는 주장을 느닷없이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사드 문제에 대해 '3불1한‘(3不1限) 정책을 대외적으로 공식 선언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주장하는 ’3불‘은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체계에 들어가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말한다. ’1한‘은 이미 주한미군에 배치된 사드의 운용 제한을 의미하는데 한국 정부가 이를 대외적으로 약속했다고 중국이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왕 대변인은 "제가 여러분에게 지적하고 싶은 건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것이 중국의 전략적 안전보장 이익을 현저히 해친다는 사실"이라며 "중국 측이 누차 한국 측에 우려를 나타냈고 한국 정부가 정식으로 '3불1한' 정책을 선시(宣示·표명)했다"고 밝혔다.

이는 박진 장관이 "사드 3불은 (국가간) 합의나 약속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에 대해 반박하는 형태로 나온 발언이다. 하지만 1한과 관련 한중 간 협의가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설 자위적 방어수단”이라며 “결코 중국과의 협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8월 정도면 기지가 완전히 정상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드 기지의 정상화 발언은 중국의 ’1한‘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 국무부도 중국의 3불1한 주장이 나온 직후 미국의소리 방송을 통해 “한국에 대해 자위적 방어 수단을 포기하라고 비판하거나 압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파장이 커지자 중국은 살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애초 중국 매체를 통해 보도된 왕 대변인의 발언은 “한국 정부가 정식으로 대외에 3불 1한 정책을 선서(宣誓)했다”는 내용으로 소개했다. 선서는 대외적으로 표명한 공식 약속의 의미가 담긴 표현이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게재한 발언록에는 선서가 아닌 ‘선시’(宣示)라고 표기됐다. 선서와 선시는 중국어 발음이 같다. 하지만 선시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의미로 대외적인 약속을 의미하는 선서보다는 구속력이 약한 표현이다. 

이처럼 표현이 바뀐 것은 양국관계의 파장을 염두에 둔 것인지, 아니면 혼선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점은 중국이 새로운 관점에서 한중관계에 사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안보동맹 ‘칩4’의 한국 가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중국이 경고와 견제 차원에서 한국의 사드를 겨냥해 선제공격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