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당무 개입 논란 자초... 세 번 고개 숙인 권성동 대행의 ‘리더십 위기’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 도중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 도중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정권이 집권 초부터 심각한 내부갈등을 노출하면서 격랑에 휩쓸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사이의 ‘문자 유출 사태’는 이준석 대표의 중징계 사건 이후 잠재된 내홍을 폭발시키는 뇌관이 됐다. 몇 줄 되지 않는 문자에는 윤석열 정권의 리더십 자체를 뿌리부터 뒤흔들만한 폭발력이 담겼다. 본의 아니게 대통령의 표리부동한 언행이 과녁이 됐고 당을 대표하는 직무대행은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신하’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문자 유출 사태를 촉발한 이 대표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표현을 동원해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은 물론 간접적으로 대통령까지 염두에 둔 듯한 임전불퇴의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여권 내부의 총체적인 리더십 위기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내부총질’ 언급
국힘 내부에서도 ‘부글부글’

취임 초기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강했다.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측근 검사들만 중용하는 인사부터 지인이나 가족 특혜 및 사적 채용 논란 등 불공정 인사가 도화선이 됐다. 신선한 시도로 주목을 받았던 출근길 문답에서 계속 이어진 말실수와 태도 논란, 습관처럼 반문하는 ‘전 정권 탓’ 등도 지지율을 하락시킨 원인으로 꼽혔다.

급락했던 지지율은 30%대 초반에서 일단 바닥을 다지면서 소폭 반등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할 무렵 권 대행과의 문자 사태가 터져 나왔다. 특히 윤 대통령이 직접 이 대표를 겨냥해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지칭한 것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당장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7일 비대위회의에서 “언제는 이 대표에 의지해 젊은이들 표 구걸하더니 이제는 내부 총질한다고 젊은 대표를 잘라내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미소를 보며 정치가 참으로 잔인하다고 한 번 더 느낀다”며 “이런 대통령에게 희망이 있을지 회의적이다. 국민의힘 내부 권력 싸움에 대통령이 너무 깊게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갈했다.

야당 의원들은 ‘조폭’, ‘뒷담화’ 등 거친 표현을 동원하기도 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민주공화국의 지도자일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도 “대통령이 민생은 팽개치고 조폭처럼 숨어서 당권싸움이나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영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내부 뒷담화는 그만하시고 야당과 앞담화를 하시라”라며 “약속대로 국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대화로 민생부터 챙기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문자 뇌관이 터지자 ‘멘붕’ 상태에 빠진 듯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 대표와 친밀한 관계인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윤 대통령과 권 대행의 문자 메시지 사진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공유했다. 윤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했다는 비판에 동조하는 모습으로 해석되는 장면이다. 이는 윤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에서 “당무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승민계’로 불리는 김웅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대선 기간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함께 선거운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올리고 "내부 총질"이라는 짤막한 글을 남겼다. 유 전 의원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용태 최고위원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서 "이준석 대표가 무슨 내부 총질을 했나. 대선 경선 기간에 수만 킬로미터 뛰면서 정권 교체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대통령께서 내부총질이라고 인식하셨다는 것에서 당황스럽다"라며 불편한 기색을 표출했다. 권은희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사적 대화'라기보다 (대통령의) 솔직한 속내"라면서 "전임 당 대표에 대한 윤리위 결정을 두고 토사구팽을 계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규명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성동 ‘헛발질’ 이어지자
새 지도체제 전환 논란 재점화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달 27일 국회로 출근하며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내용 공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달 27일 국회로 출근하며 윤석열 대통령과의 문자내용 공개와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권 대행의 ‘리더십 리스크’는 사실상 사면초가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원내대표로 선임한 지 석 달 만에 벌써 세 번째 고개를 숙이는 화를 자초한 탓이다. 특히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의 부적절한 해명으로 사과한 후 일주일 만에 다시 대국민 사과를 한 모습이 연출되자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권 대행을 ‘원톱’으로 내세운 것으로 정리됐던 당 지도체제 문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논란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벌써 당 일각에서는 흠집이 난 권 대행 체제를 내리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거나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새로운 지도부 구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제기된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새로운 지도부 체제 논란이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YTN ‘더뉴스’에 출연한 조해진 의원은 “집권당이 국정 뒷받침을 제대로 하려면 원내대표도 전력 질주를 하고 당 대표도 전력 질주를 해도 사실은 부족할 상황인데 한 사람이 그걸 둘 다 감당한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처음부터 저는 비대위 체제로 가서 비대위원장을 별도로 뽑아야 된다고 했는데 점점 그런 필요성이 더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반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대위를 만들어서 뭘 하겠느냐”면서 “차라리 정상적인 대표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당장 지도체제 교체가 성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비대위 전환은 전당대회 전까지 한시적인 체제라 적임자를 찾는 것도 한계가 있다. 조기 전당대회도 이 대표가 스스로 사퇴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 대표의 행보를 보면 전혀 그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적인 상황을 감안하면 권 대행 체제를 당분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잠재적 당권 주자들은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차기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지난달 27일 기자들과 만나 "어떤 경위가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결과적으로 문자가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기서 또 왈가왈부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중에 별도로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겠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친윤계 맏형이자 차기 당권 주자로 분류되는 정진석 의원도 “소이부답”이라며 논란으로부터 거리를 뒀다.  

하지만 또 다른 돌발변수가 발생해 권 대행이 다시 리더십에 상처를 받는 상황이 오면 국민의힘 내부의 지도부 체제 논란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