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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해체 5년] 부활의 싹이 튼다
주력 계열사 대부분 성공적 구조조정으로 워크아웃 졸업
전·현직 대우맨들 '대우 브랜드·김 전회장'에 강한 애착






‘한없는 미안함을 가슴에 담고 오늘 저는 대우 가족 여러분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중략)… 비록 제가 떠나더라도 대우만큼은 우리 경제를 위한 값진 재산이 되어야 합니다. 대우는 여러분의 보람과 긍지가 담긴 소중한 직장입니다… (중략)… 새로 선임될 유능한 경영진들과 힘을 합쳐 대우를 희망찬 회사로 재탄생시켜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대우와 모든 대우 가족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세계 경영을 기치로 지구촌 경제계의 칭기즈칸을 꿈꾸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며 임직원들에게 남긴 고별사다. 지난 11월 1일은 그가 역사 속으로 퇴장한 지 꼭 5년이 되던 날이었다.

IMF 구제금융 체제에서 몰아 닥친 유동성 위기에다 미흡한 계열사 구조 조정에 대한 정부ㆍ채권단과의 견해 차이로 졸지에 재계 2위 그룹의 경영권을 내놓았던 비운의 총수. 이후 외화 유출과 분식 회계를 주도한 부도덕한 경영인이라는 멍에까지 덮어쓴 채 해외를 떠돌고 있는 방랑자.

처지는 이리도 고단하지만 김 전 회장이 대우 임직원들과의 고별사에서 애틋하게 당부했던 한 가지, 즉 대우를 희망찬 회사로 재탄생시켜 달라던 소망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 과거 대우의 주력 기업들이 워크 아웃(기업 개선 작업)을 성공적으로 졸업한 뒤 활발한 영업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식을 아마도 접했을 김 전 회장의 감회는 어떨까.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었다며 홀가분해 할까. 아니면 긴급 처방만 이뤄졌다면 모두 살아날 ‘자식’들을 속절없이 보냈구나 하며 억울해 할까. 물론 그 심중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의 땀방울과 고뇌가 스민 옛 대우 계열사들의 지금 모습이 사람들에게 묘한 소회를 준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룹 해체 5년, 대우와 대우인들의 현주소를 살펴 본다.

- 12개 워크아웃 대상 계열사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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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 위기가 닥친 이후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던 대우그룹은 1999년 7월 19일 만기 도래한 3조원의 기업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 위기에까지 몰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름대로 자구책을 모색해 왔던 김우중 당시 회장도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정부와 협상을 벌여 4조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주식과 부동산 등을 담보로 제공하는 동시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약속하게 된다.

이에 따라 채권 금융 기관들은 같은 해 8월 26일, 대우의 12개 계열사에 대해 워크 아웃 결정을 내리고 실질적인 그룹 해체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워크아웃 대상으로 결정된 회사들은 당시 대우그룹의 간판급 주력 계열사들. 채권단은 이 회사들이 단기적인 자금 압박에서 벗어나면 회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 후 5년. 대우그룹의 옛 계열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999년 8월 당시 대우그룹의 34개 계열사 중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12개사를 제외한 나머지 22개사는 계열 분리를 통해 독자 법인이 됐거나, 청산 혹은 대우 관련사에 흡수 합병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워크아웃에 들어 갔던 12개 주력 계열사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구조 조정을 거쳐 ‘졸업장’을 받아 든 상태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대우일렉트로닉스(옛 대우전자의 신설 법인) 외에는 워크아웃 대상 계열사들이 모두 정상화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워크아웃을 졸업했거나 워크아웃을 자율 추진하도록 채권단이 승낙한 경우가 정상화의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워크아웃 이후 ㈜대우와 대우중공업이 각각 두 개 회사로 분할된 점을 감안하면 워크아웃 대상은 총 14개사가 되는데, 이 중 10개사에서는 채권단이 이미 철수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워크아웃 성적표는 채권단이나 정부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옛 대우 계열사들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워크아웃을 졸업했다”며 “대부분 구조 조정을 잘 이행해 회생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대우인들도 옛 대우 계열사들의 부활을 누구보다 반기고 있다. 또 무너질 대로 무너졌던 자존심도 어?정도 회복했다며 밝은 표정들이다.

- 대우인들 "상처난 자존심 회복" 반겨



이런 때문일까. 지난 10월말에는 옛 대우 계열사의 최고 경영진 20여 명이 공개적인 회동을 가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 사장, 양재신 대우종합기계 사장, 김충훈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장 등이 대우그룹 시절 지어진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 골프장에서 모임을 가진 것. 이 모임에는 닉 라일리 사장 등 GM대우차 경영진도 자리를 함께 해 의미가 더욱 컸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옛 계열사 CEO들이 이처럼 대규모 회동을 가진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골프 회동은 자동차 내수 판매가 침체된 상황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옛 식구끼리 서로 돕자’는 취지로 대우자판과 GM대우 측이 공동 기획한 판촉 행사였다.

하지만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이를 계기로 옛 계열사 간 끈끈한 유대를 다시 살려 나가자는 데 참석자들이 뜻을 모았기 때문. 이동호 대우자판 사장이 총대를 메고 모임의 정례화를 제안했는데, 다른 CEO들도 ‘계열사 별로 돌아가며 행사를 주최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흔쾌히 동의했다고 한다.

조심스러운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김우중 전 회장과 연결시켜 보는 시각에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대우 몰락에 대한 감회도 이제는 쉽사리 털어 놓을 법하지만 막상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옛 계열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한 CEO마저도 “지금 와서 지나간 이야기 해서 무엇하겠습니까”라는 한 마디로 자신의 감회를 대신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과거 지사로 치부하는 듯도 했지만, 여러 정황상 아직은 속내를 말하기가 거북하다는 입장인 것 같았다.

- '세계 경영' 정신이 회생의 밑거름

1999년 그룹 해체 전 ‘대우 가족’은 국내 15만 명, 해외 10만 명 등 모두 25만 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김우중 전 회장과 함께 물러난 계열사 경영자들과 상당수 임직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우인은 옛 계열사에 남아 회사 회생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 왔다. 회사를 살리는 것만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우의 ‘세계 경영’ 정신이 가장 많이 배어 있는 대우인터내셔널(과거 ㈜대우에서 분할된 신설 법인). 한때 그룹 부실의 핵심으로 지목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과거의 잘 나가던 시절을 떠올릴 만큼 무역 역군으로 확실하게 부활하고 있다. 이 회사의 오원석 홍보부장은 “무엇보다도 다년간 탄탄하게 쌓아온 해외 네트워크와 종합 상사로서의 최대 강점인 무역 노하우가 회생에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며 “핵심 역량과 수익 모델이 잘 유지된 덕분에 워크아웃 조기 졸업이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우인터내셔널 측에 따르면 워크아웃 기간 동안 전 임직원은 영업력 회복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해외 주재 경험이 풍부한 차장급 이상 고참 영업직원들은 직접 일선을 뛰어다니며 국내외 6,000여개 거래선을 유지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물론 임금 동결 등 임직원들의 자구 노력도 회사 회생에 적지 않은 힘이 됐다.

그 결과 회사 분할시 940%에 달했던 부채 비율은 213%로 감소됐고, 2002년과 2003년 각각 784억, 545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올리며 2년 연속 흑자를 달성할 정도로 부활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이런 가운데 회사를 떠났던 임직원들도 다시 돌아 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미 복귀해 영업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대우맨’들은 약 20여명이라고 한다.

이처럼 ‘남은 자’들의 노력으로 옛 대우의 자존심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지만, ‘떠난 자’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물론 대우 가족의 선전이 무엇보다 기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들이 걱정하는 것은 대우라는 이름이 언제까지나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대목이다. 우량 기업으로 거듭난 만큼 채권단에 의해서 남의 손에 넘어갈 것은 분명한데, 과연 새 주인이 대우 브랜드를 유지시켜 줄 것인가 하는 우려인 것이다.

퇴직 전 부사장급 임원으로 재직했던 A씨는 “옛 대우 계열사들이 살아난 것은 대우 정신을 가진 임직원들이 남아서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라면서도 “조만간 새 주인을 맞을 회사들이 대우라는 이름을 지켜갈지, 또 대우 출신 CEO들이 역할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 적잖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 김 전 회장 도전정신에 호의적

그룹 해체 이후 회사를 떠난 전직 대우 임원들은 상당수다. 이들은 지금도 ‘대우인회’라는 친목 모임을 통해 서로를 챙기고 대우의 역사를 되새긴다. 이 모임에는 현재 옛 계열사에 근무하는 임원들도 다수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매년 3월 22일 대우 창립 기념일에 전체 모임을 갖고 있는데, 골수 회원 50~60여명은 대우재단 빌딩에 차린 사무실에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 도장’을 찍기도 한다고. 한 퇴직 임원은 “해외 영업과 경영에 발군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릴없이 소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며 “국가적인 자원이 썩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했다.

남은 대우인이든 떠난 대우인이든, 김우중 회장은 어쩔 수 없는 회고의 대상이다. ‘왜 그렇게 무모했을까’라며 탄식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그에 대한 호감을 아직 갖고 있다. 특히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던 기업가 정신에 대해서는 경외를 나타낸다.

그래서인지 대우인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바람을 피력한다. “이제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할 수는 없겠지만, 김 회장의 경륜과 노하우를 후진들에게 전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우 몰락과 김우중 전 회장을 둘러싼 국내의 복잡한 정치ㆍ사회적 변수는 이들의 희망을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



김윤현 기자 unyon@hk.co.kr  


입력시간 : 2004-11-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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