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 방어막 친 李...‘토사구팽’ 공세 잠재울까 

 

지난 9일 우크라이나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9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9일 우크라이나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9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대통령 선거에 이어 6·1 지방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둔 국민의힘이 암초를 만났다. 외부 공세도 아닌 내부의 당권 쟁탈전 양상이 벌써부터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례가 없는 여당의 내부 갈등은 이준석 대표가 진원지다. 선거를 치르면서 잠복된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이 대표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 대표를 향한 공세는 윤석열 대통령을 만든 1등 공신 중 한 명인 5선 중진 정진석 전 국회부의장이 선봉에 나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두 정치인의 설전은 ‘개소리’, ‘육모방망이 철퇴’, ‘싸가지’, ‘나쁜 술수’, ‘짬짬이’ 등 원색적인 설전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당 안팎에서는 선거가 끝나자 이준석을 ‘토사구팽’하려는 시나리오가 작동했다는 논란이 급속하게 확산됐다. 이 대표가 혁신위원회 설치 의제를 내세워 공천 규칙을 바꾸려고 하자 당권 쟁탈을 위해 당 주류세력이 이 대표를 임기 전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尹-李’ 갈등 두 차례 봉합이 ‘원죄’?...송영길 2월초 ‘팽’ 예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부터), 권성동 원내대표, 정진석 의원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8회 지방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부터), 권성동 원내대표, 정진석 의원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8회 지방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국민의힘 내분은 이 대표의 우크라아나 행을 둘러싸고 ‘자기 정치’ 논란으로 점화됐다. 그러다 이 대표의 혁신위원회 구상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이어지더니 지방선거 공천 논란으로까지 발화가 됐다. 

사흘간 이어진 이 대표와 정 전 부의장의 난타전은 지난 9일 이 대표의 귀국을 앞두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다. 불씨의 원천이 대선 당시 이 대표가 당무 주도권을 놓고 두 차례나 갈등을 빚다가 간신히 ‘원팀’으로 봉합한 전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 당시도 이 대표를 향한 ‘자기 정치’ 공세가 대표 사퇴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선거만 끝나면 이 대표가 토사구팽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일찌감치 제기됐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분석이었다.

송 전 대표는 지난 2월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면 이 대표와 홍준표 의원은 ‘팽’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지금은 대선에서 2030세대를 잡기 위해 이 대표가 필요하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갈등을 봉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이틀 후인 지난 2월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시 송 대표가 비주류로 활동해 온 점을 지적하면서 “어떤 본인의 과거 경험이나 그런 것으로 판단하신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다”며 “다른 상황이 나올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현재 상황은 송 전 대표의 예상처럼 흘러가고 있다. 당 대표로 선임됐지만 윤핵관과 갈등을 빚는 차원에서 보면 이준석은 여전히 비주류이기도 해 스스로 받아친 논리에 갇혀 버렸다. 

이 대표는 지난 8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연합뉴스TV 인터뷰에서 “두 번의 선거에서 이기고 정치정당개혁 어젠다를 만들어나갈까 말하니깐 (당 대표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어이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본인이 예견한 ‘다른 상황’이 아니라 송 전 대표의 예언이 그대로 적용되는 현실을 인정한 셈이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국민의힘 내부는 진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며 중재에 나섰다. 차기 당권을 둘러싼 내홍이라는 관측에 대해서도 “억측”이라고 반박했다.

정 전 부의장도 지난 9일부터 확전을 자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지역구를 거론하면서 가뭄에 대비한 민생 회복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더 이상 이 대표와 맞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李 “젊은 세대 눈에 밟혀”...‘이대남’ 앞세워 사실상 경고

국민의힘 내분은 친 이준석계로 분류되는 당내 ‘젊은 피’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 7일 천하람 혁신위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선거 때는 이 대표의 이슈 주도권이 도움이 되니까 쪽쪽 빨아먹다가, 선거 끝나고 나서는 ‘아, 너무 자기만 주목 받는 거 아니야’, ‘자기 정치하는 거 아니야’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김용태 청년 최고위원도 지난 9일 당 회의에서 “명분이 부족한 충고는 충고가 아닌 당 지도부 흔들기로 보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나는 국대다’를 통해 국민의힘 대변단에 선발된 박민영 대변인과 임승호 전 대변인도 지난 8일 정 전 부의장에 대한 공격에 가세했다. 박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어른’이라는 궁색한 권위를 앞세워 젊은 대표를 찍어 누르려 드는 것은 자칫 당 전체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 있는 크나큰 실책”이라고 날을 세웠다. 임 전 대변인도 “이준석을 제거하고 싶다면, 이준석을 능가하는 혁신안을 내놓으시라. 그 정도의 혁신안도 내놓지 못한다면 그 시대에 묻어가시라. 그것이 그대의 한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캡처

이 대표는 대놓고 자신의 최대 무기인 ‘이대남’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이 대표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서 “모든 걸 1년 동안 감내해 오면서 이 길을 가는 것은 그래도 정치 한번 바꿔보겠다고 처음 보수정당에 눈길을 준 젊은 세대가 눈에 밟혀서”라고 적었다. 국민의힘의 새로운 지지세력으로 등장한 2030 세대론을 꺼내 들고 ‘인내’를 들먹거린 것은 일종의 시위인 셈이다. 자신을 대표 자리에서 끄집어내는 시도가 진행될 경우 이대남 세대가 등을 돌릴 것이라는 경고와 다름없다. 

정치권의 시선은 오는 24일 전후로 예정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로 쏠리고 있다. 여기서 이 대표의 ‘성상납 의혹’ 관련 징계가 논의되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여당 내 주도권 경쟁의 첫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보수성향의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대구 가톨릭대 특임교수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장 교수는 지난 6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윤리위 몇 분하고 통화를 해봤는데 (징계)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며 “6월 24일 이 대표에 대해 당원권 정지 정도의 징계를 해야 된다는 의지가 상당히 강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원들도 (의견이) 나눠져 있다”며 “윤핵관은 ‘잘못했으면 징계’, 성일종 의원이나 한기호 사무총장 같은 분들은 ‘경찰수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대선, 지선을 이긴 당대표를 쫓아내려고 하냐, 부적절하다’는 것인데 앞으로 당은 상당히 시끄러울 것 같다”고 했다.


이재형 기자 silentroc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