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 고통 분담서 정부 몫 쏙 빠지고 부자 감세 생색만
정부부터 공약 재점검 등 솔선수범해야 국민·시장 신뢰 회복

[주간한국 김병수 기자] 미국이 물가 급등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위기 극복을 위해 지난 1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p) 올렸다. 이로써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준금리가 1.75%로 같아졌다. 보유 달러가 부족해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를 겪은 우리로선 한-미 금리 역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 금리가 더 높으면 우리나라에 투자했던 달러가 빠져나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주식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지난 17일 삼성전자 주식은 결국 5만원대로 추락했다.

현재 경제 상황은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라는데 큰 이견이 없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타격을 입은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석유·천연가스)와 식량(밀·팜유 등)은 무기화했다. 공급망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각국의 물가가 가파르게 올라 전 세계가 난리다. 미국이 자이언트(0.75%p) 스텝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우리나라도 초비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회의에서 "어려울수록 민간·시장 주도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확 바꿔야 한다"며 "민간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밝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으로 ▲법인세 최고세율 22%로 인하 ▲1주택자 14억원까지 종합부동산세 비과세 ▲증권거래세 0.2%로 인하 ▲연금저축+개인형 퇴직연금(IRP) 연간 한도 900만원으로 확대 ▲육아휴직 1년에서 1년 6개월로 연장 ▲노인 기초연금 40만원으로 단계 인상 등을 발표했다.

◇ 민간 주도 경제에 방점…복합 위기 대책으론 미흡

윤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기본적으로 올해 경제 정책 운영 계획이어서 위기 대책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러나 물가 쇼크가 국민 경제의 당면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관련 대책이 매우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날 오전 추경호 경제부총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물론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참석한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선 현 경제 상황을 복합위기로 진단하고, 물가 안정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는 데도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추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물가에 더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용과 함께 공급 측면의 원가 부담 경감, 기대인플레이션 확산 방지 등 다각적 대응 노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급한 기대 인플레이션 확산 방지와 관련해선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채권·외환·주식 등 금융시장 급변동 가능성에 대한 몇몇 대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 이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들의 빅(0.5%p) 스텝 가능성 질문에 "다음 통화정책결정회의(7월13일)까지 3~4주 남아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그사이 나타난 시장 반응을 보고 (기준금리 인상 폭을)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이 총재로선 시장 상황을 살펴 가며 결정할 시간이 충분하다. 이번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 결과가 미국 물가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확인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표는 7월 10일(현지시간) 발표된다. 이미 미국이 추가적인 자이언트 스텝을 예고한 상태에서 6월 물가 지표가 어느 정도 수그러들거나 예상보다 상승 폭이 예상보다 작다면, 이 총재로선 우리 경기를 고려해 조금은 천천히 스텝을 밟은 여지가 생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도 빅(0.5%p) 스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다음 미국의 FOMC가 7월 26~27일(현지시간) 열리고, 다음 금통위는 8월 25일이다. 금통위 일정이 미국과 한 달이나 벌어져 있다. 미국에서 추가적인 자이언트 스텝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데 7월 금통위에서 0.25%p 인상에 그치면, 대처할 시간이 부족하다. 물론, 임시 금통위를 열어 추가 인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은이 글로벌 흐름을 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키워 인플레 파이터로서의 신뢰마저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다.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2022.6.16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2022.6.16

◇ 정부의 고통 분담 의지 확인 불가

한은은 금융시장과의 밀당 문제로 성급하게 패를 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정부가 경제정책방향 발표에서 정부의 고통 분담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우려를 낳고 있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와의 전쟁에서 그나마 성과가 있었던 사례를 보면, 모두 정부의 강한 재정 지출 억제가 포함돼 있다. 미국에서 유명한 70~8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때는 폴 볼커라는 엄청난 인플레 파이터가 있었다. 의회와 격렬하게 논쟁하고 실업률이 10%까지 치솟아 살해 위협을 받아 가면서도 1년 8개월 동안 10%p(11.5%→21.5%)나 올렸다. 그렇게 3년 만에 인플레를 잡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는 물가를 잡기 위해 권위적이고 강력하게 가격을 통제했다. 그러나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전년 재정지출에 대한 고려 없이 백지부터 예산을 짜는 '영점기준예산'을 도입하고 예산을 동결해 시중 통화량 증가도 강하게 억제했다. 그 결과 박정희 정부 때의 두 자릿수 물가를 연평균 3.8%로 낮출 수 있었다. 전두환 정부 후반기는 특히 저달러·저유가·저금리로 불리는 '3저'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로 국민소득까지 많이 증가해 물가 자극 요인인 컸던 시기여서 3%대 물가의 의미를 작게 볼 수 없다.

정부는 이번 경제정책 방향에서 당면한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고통 분담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기업 활력 제고 취지라지만 대기업·부자 감세만 더 커 보이는 정책만 쏟아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위기 극복 고통 분담 방안은 재정지출 억제다. 인플레 상황에서 통화당국이 금리를 올려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여도, 정부가 선거 때 공약대로 쓸 돈 다 쓰겠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윤 대통령과 경제팀의 물가 관리 의지가 의심받는 대목이다. 


김병수 기자 bskim@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