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문화, 라이프 화두는] '작가선언 6.9' 등 젊은 문인들 활동 눈에 띄네

용산참사 유가족들에게 헌정집을 전달하는 작가들
올 한 해 출판계를 정리하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같은 베스트셀러 목록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논리를 떠나 보면, 문학계 이슈는 단연 '정치'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대표 문예지 편집위원을 포함, 문학평론가 14인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한국문학계 대표적 이슈 2~3개를 대답한 결과 14인 모두 공통적으로 '작가선언6.9' 등 젊은 문인들의 활동과 '문학과 정치'담론이 비평 전반에 등장한 것을 가장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꼽았다. 이후 장편소설 붐, 김언 시인의 미당문학상 수상 등이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꼽혔다.

왜, 정치인가?

인터뷰에 참여한 14인의 평론가들은 촛불시위,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 사회변화를 겪으며 젊은 작가들이 거리로 나선 점이 2009년 가장 의미 있는 이슈라고 입을 모았다. 올 한 해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집을 꼽아 달라는 말에 역시 대부분의 평론가는 <이것은 사람의 말>을 꼽았다.

이 책은 젊은 작가 192인의 '한줄 성명'을 정리한 일종의 선언문 모음집이다. '작가선언 6.9'로 대표되는 젊은 문인들의 시민 활동은 6월 9일 한 줄 선언문 발표에서 시작돼 이후 용산참사 1인 시위, 인터넷 신문 릴레이 기고, 용산참사 헌정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 역입니다> 발간으로 이어졌다.

기존 문인들의 정치 참여나 운동이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것에 반해 '작가선언 6.9'는 문인들의 자발적, 수평 모임이었다. 인터넷 공간을 통한 활발한 토론, 대표자 없는 문인들의 개별적 시민운동 등 독창적 형태의 운동으로 눈길을 모았다.

또한 문학적 지향점을 달리하는 문인들이 자생적으로 공동체 행동을 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작가선언 6.9'에는 사회참여와 창작을 함께 했던 리얼리즘 진영부터 전위적 작품을 주로 쓰는 모더니스트, 자유주의 진영까지 다양한 문인이 함께 활동해왔다.

젊은 문인들의 시민으로서 행동은 문학적 고민으로 이어졌다. 시인 진은영이 지난 해 계간지 <창작과 비평> 겨울호 특집에 '감각적인 것의 분배'를 기고한 사례를 시작으로 문인들은 좌담회, 기고글 등으로 문학과 정치성을 접목시키는 방향에 대한 고민을 쏟아냈다.

이와 관련해 '문학의 정치성'이 비평의 주요 담론으로 부상했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문학동네>, <세계의 문학>, <실천문학> 등 거의 모든 문예지가 올 한 해 문학과 정치에 관한 특집을 다룬 바 있다.

80년대 민중문학, 참여문학론이 비평계 담론 이후 작가들의 창작으로 이어졌다면 2000년대 문학과 정치 담론은 문학 창작자, 특히 시인들의 고민 이후 평론가들의 담론이 잇따라 출연했다는 점이 차이로 읽힌다. '문학과 정치' 담론은 그러나 담론을 이끌 만한 대표적 작품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론적, 추상적 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작가 공지영
장편 연재 활성화

국내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발표한 2009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면 상위 10위권 안에 든 문학 작품집은 거의 모두 장편소설임을 확인할 수 있다. 100만부를 돌파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해 공지영의 <도가니>, 김훈의 <공무도하> 등 중견 작가들의 장편이 활황을 보였다. 출판사와 작가 역시 기존 단편 소설집 위주의 기획, 집필에서 장편으로 추세가 변하고 있다.

장편 연재의 활성화는 단순히 출판 시장의 이윤 논리를 넘어, 2000년대 이후 문학계 변화와 맥락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올 한해 의미 있는 이슈로 꼽힌다. 한국 소설계는 지난 수십 년간 신인상, 신춘문예로 대표되는 등단제도부터 굵직한 문학상까지 단편 소설을 중심으로 문학성을 평가했고, 단편을 묶은 소설집 역시 출판계에서 효자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경장편 위주의 해외문학계에서 한국문학작품을 소개하는 데 일종의 벽으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장편위주의 작품 생산은 비평계와 번역계 모두에서 요구된 사항이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모티프로 소설이 각광을 받으며 장편의 요구는 더 절실해졌다.

장편 연재가 활성화된 것은 지난해부터 인터넷 연재, 장편 전문 문예지 창간 등 인프라가 갖춰지기 시작하면서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교보문고, 예스 24등 인터넷 서점, 문학동네 블로그 등 출판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연재 지면이 속속 등장했고, 인터넷 연재 전문 사이트 '나비'가 올해 하반기 문을 열었다. 지난 해 인터넷을 통해 연재된 장편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올해 그 결실이 보이기 시작한 것.

작가 김훈
현재 황석영, 이제하, 신경숙, 구효서, 윤성희, 정한아 등 중견과 신진을 포함한 10여 명의 작가들이 인터넷서점과 웹진, 출판사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인터넷 연재가 한국문단의 지형도를 바꿀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적어도 장편 연재를 활성화시키는 인프라가 구축됐다는 점에는 평론가 대부분이 합의했다.

지난 해 가을 창간된 문예지 <자음과 모음>도 장편의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통상 문예지에 많아야 한두 편의 장편이 연재되는 것과 달리 <자음과 모음>은 최대 9편의 장편소설을 한꺼번에 연재하고 있다. 현재 정영문, 하성란, 조하형, 권지예, 김인숙 등이 <자음과 모음>에 신작 장편을 연재 중이며 이승우의 <한낮의 시선>은 연재 후 단행본으로 묶였다.

자문 평론가
강계숙, 고봉준, 권혁웅, 박수연, 복도훈, 서동욱, 신형철, 오창은, 이경재, 이명원, 이수형, 정여울, 정은경, 함돈균

2009년의 시집, 소설집

예술을 보는 방식이 하나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시집과 소설집 모두 평론가마다 '단 하나'의 작품집에 합의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을 대표하는 소설은 전성태의 <늑대>와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 전혀 다른 벡터의 이 두 작품집은 2000년대 한국소설의 현재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데 평론가마다 이의가 없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지난 5년간 발표한 김연수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작가 신경숙
이 기간은 작가가 국내 대표적 문학상을 휩쓸며 '김연수 시대'를 연 기간과 일치하는데, '답보상태'란 일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소설 기교의 측면, 즉 문장, 메시지 전달 방식 등 한국 단편소설의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전작 <국경을 넘는 일>에 이어 한국사회 분단과 후기자본주의 문제에 천착한 소설가 전성태는 <늑대>를 통해 미학적 완성도를 한층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이전 정통 서사에 갇힌 소설 양식이 사회철학적 담론을 결부시켜 밀도 높은 작품으로 이어졌다는 것.

평론가들에게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2009년 시집은 신해욱의 <생물성>. 일종의 고백체 문법의 시집은 미학적 측면에서 가장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시집은 시 쓰는 자와 생활인 사이 어떤 장애물도 없이 투명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투명성의 미학'을 갖춘 신해욱의 시는 공적인 영역에서도 고백이 가능한 한국 문학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밖에 김언의 <소설을 쓰자>, 이근화의 <우리들의 진화>, 하종오 <입국자들> 등이 2009년을 대표하는 시집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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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