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최저임금 이의신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최저임금 이의신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저임금제는 근로자에게 최저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선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하면서 실시 근거를 마련했지만, 실제 시행은 1988년부터였다.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고 있으며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잘 지켜지는지는 의문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 미달자가 322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5.3%에 달한다. 

업종별로는 농림어업이 54.8%로 가장 높고, 숙박음식업이 40.2%로 뒤를 잇는다. 이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에서 업종별·지역별 차등화가 이슈로 부상했다. 사업주의 지급 능력과 근로자의 필요 생활비 수준을 반영해 최저임금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업종별 차등화는 1988년 단 한 해만 시행했다. 당시 정부는 제조업에 한정해 1군과 2군을 구분해 최저임금을 책정했다. 그러나 업종별 최저임금을 정하는 기준을 찾기 어렵고, 근로자 사이 형평성 문제, 노사 간 갈등 심화로 다음 해에 폐기했다. 

올해는 주로 업종별 차등화가 논쟁거리가 됐다. 최저임금법에 근거가 있어 법 개정 없이도 시행이 가능해서다. 그러나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부결됨으로써 장기 과제로 넘어갔다. 내년 최저임금은 업종과 무관하게 5% 오른 9620원으로 결정됐다. 

다만 그 불씨는 살아있다고 봐야 한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들이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와 방법에 대한 연구를 고용노동부에 의뢰하자고 제안해서다. 아직 의사결정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만약 연구를 수행한다면 그 결과는 2024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가 업종별 차등화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낙인효과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낮게 결정된 업종은 저임금 업종으로 낙인찍혀 계속 임금이 낮은 수준에서 머물 가능성이 크고, 이는 산업 전반의 임금 격차 심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실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업종별로 차등을 둘 객관적 근거를 마련하기가 어렵고, 업종도 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세분류, 세세분류로 나눠지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할지도 애매하다. 동일한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사업주의 지급 능력에 차이가 클 수 있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일본이 그나마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업종별로 임금을 차별화하려는 취지보다는 특정 산업에서 특별하거나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게 임금을 보전해주려는 의도가 강하다. 노사 당사자의 신청으로 이뤄지며 민사적 효력만 갖는다. 

호주의 경우에는 국가가 최저임금을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직종 및 산업별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미숙련 노동자에겐 단일한 국가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숙련 노동자를 대상으로 그보다 높은 수준에서 직종 및 산업별 최저임금제를 실시한다. 

지역별 차등화는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도권과 지방은 집값 등 필요 생활비 수준이 크게 다를 수 있어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업종 구성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는데 당연히 지방에는 농림어업의 비중이 높다. 

지역별 차등화를 하는 나라로는 미국과 일본을 꼽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법으로 최저임금을 정하고 그보다 높다는 전제하에서 주별로 서로 다른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연방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이나 뉴욕은 15달러, 버지니아는 9.5달러로 각양각색이다. 

미국은 국토가 광대하고 이에 따라 지역의 산업적 특성이 크게 차이 날 수 있으므로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게 국토가 협소하고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각하므로 더 참고가 된다. 

일본은 중앙 최저임금심의회가 제안한 기준치를 참고해 지방 최저임금심의회에서 해당 지역의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지역을 A·B·C·D 4등급으로 나누는데 A 지역에는 도쿄·오사카 등 대도시가 포함되며 등급이 낮을수록 인구가 적은 소도시가 많다. 

2017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도쿄(958엔)와 가장 낮은 오키나와(737엔)의 임금 격차는 221엔이다. 문제는 그 격차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 커진다는 점이다. 2002년 두 지역의 최저임금 격차는 104엔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우리보다 앞서 대도시로의 인구집중과 지방소멸이라는 현상을 겪고 있는데, 지역별 최저임금 격차는 이런 경향을 촉진시켰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방 기업들은 더욱더 인력난에 시달렸을 것이며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가 도시로 이주해 비정규직으로 편입됨으로써 도시 내에서의 임금 격차도 심화시켰을 것이다.

업종 및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제는 생각지 않은 파생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제는 사업주의 지급 능력 차이 때문에 제기됐으며 특히 영세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로부터의 요구가 강하다. 

이것은 대기업으로 집중된 산업 구조에서 기인한 바가 크며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 가맹본부의 가맹점에 대한 압박 등으로 심화했다. 그 결과가 영세한 사업자와 그 종업원 간 갈등, 즉 ‘을 대 을’의 싸움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제는 이런 구조를 염두에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영세한 사업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납품가 보장, 가맹점에 대한 보호, 일자리안정자금, 상가 임차인 보호, 카드수수료 인하 등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근로자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는 취지를 고려할 때 국가가 업종과 무관하게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는 물가 상승률과 경제 성장률을 고려해 책정해야 한다. 

업종에 따라 그보다 높은 임금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노사 협의를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인위적으로 국가가 개입하는 것보다는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할 것이며 정책 왜곡 효과를 줄이는 방식이다. 

지역별 임금 격차는 우리와 같이 협소한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대도시·중소도시·농촌지역간 계급적 구분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방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방의 소멸을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됨에 따라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으며 업종별·지역별 임금차등제도 그러한 반응 중 하나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률을 경제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적절한 대안으로 보인다. 정책적 개입을 확대하는 것은 최저임금의 도입 목적을 훼손할 수 있으며 예기치 않은 부정적 효과를 파생시킴으로써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