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경제적 양극화를 막고 산업의 균형 성장을 이룬다는 대의명분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경제적 양극화를 막고 산업의 균형 성장을 이룬다는 대의명분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간한 보고서가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며 고요했던 수면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 방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이 제도가 실효성이 낮아 점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최근 검토하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 폐지와 같은 맥락을 갖는 주장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려고 도입한 제도가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면서 산업 경쟁력을 훼손시키고,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며, 외국기업이나 온라인업체 등 제삼자만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2011년에 도입됐다. 무역 마찰을 피하고자 민간협의체 성격을 띤 동반성장위원회가 업종 선정을 맡는다.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협의를 거쳐 3년간 대기업의 사업 철수 또는 확장 억제가 이뤄진다. 3년이 지나면 재합의를 통해 3년간 연장할 수 있으므로 최대 6년 동안 적용한다. 현재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분류된 품목은 모두 125개이다. 

이보다 강력한 생계형 적합 업종이라는 제도도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되는 업종에 대해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진출하는 것을 5년간 제한하는 제도다. 전자가 형식상 자율 규제인 데 반해 법으로 규제되므로 강제성이 있다. 서점업, 자동판매기 운영업, LPG 연료 소매업 등 영세한 11개 업종이 지정됐다. 보호 대상이 소상공인이므로 정부가 그어 놓은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에 앞서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라는 것이 1979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했다. 우리나라는 소수의 대기업 집단에 금융, 세제 등의 지원을 몰아줘 집중적으로 육성시키는 정책을 시행해왔는데 그 결과 그들이 경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들이 가진 지배력을 이용해 업종 및 품목을 불문하고 사업을 확장함에 따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영역이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중소기업의 수가 99%를 넘는 상황에서 이는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급하게 안전망을 친 것이다.

이 제도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재미있게도 진보적인 성격의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폐지했다. 명분은 두 가지였는데 제도에 안주한 중소기업이 연구개발과 품질 향상 노력을 등한히 함으로써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과 글로벌 무역 자유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국내 대기업만 역차별받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다가 2011년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 시절에 부활한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친기업 정책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섰으나, 그 혜택이 모든 기업에 골고루 간 것이 아니라 대기업들에 집중됐다. 

비정규직 등의 확산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와 더불어 기업 실적의 양극화가 나타나면서 정부는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을 줄이는 작업에 나선다. 그중 하나가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이다. 

KDI의 보고서는 지난 10년간 운용한 제도의 효과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하고 평가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에서 2018년까지 대기업의 적합 업종 품목 출하액은 7조3000억원에서 4조2000억원 규모로 크게 줄어든 반면 중소기업의 출하액은 39조3000억원에서 57조5000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따라서 본 제도가 중소기업을 보호한 효과는 인정된다. 그러나 2008년 적합 업종 품목을 생산하는 업체가 전체 부가가치 중 15.1%, 종사자 수 중 12.5%를 차지하던 것이 2018년에는 각각 10%, 10.9%로 줄었는데, 이는 주로 대기업 비중 감소에 기인한 것이다. 이는 적합 업종이 다른 업종에 비해 저성장했고, 그 원인은 대기업 배제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생산액, 부가가치, 노동생산성 등 성과지표와 고용, 유형자산, 1인당 인건비 등 투입지표 분석에서도 적합 업종 품목을 생산하는 업체와 그렇지 않은 업체 간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제도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했는지 의심스럽다는 결론이 나온다. 보고서는 결국 이 제도가 중소기업의 퇴출을 막는 효과는 거뒀지만, 대기업이 참여했을 때보다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못 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하는 셈이다. 

보고서가 주로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제도의 효과를 다뤘지만, 이 밖에도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 외국기업에 비해 국내 대기업을 역차별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런 비판도 조목조목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본 제도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음은 누구나 인정한다. 제도가 도입된 이후 해당 품목의 중소기업 출하액이 늘어났다는 점은 보고서도 지적하고 있다.

2006년 제도가 일시적으로 폐지된 이후 2008년 중소기업중앙회가 고유업종에서 해제된 업종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된다.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곳이 74.5%나 됐고, 그 원인으로 ‘대기업의 시장 참여에 따른 업체 간 과당경쟁’(68.0%)을 1순위로 꼽았다. 

산업경쟁력을 훼손시킨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자금력, 인력, 노하우에서 앞선 대기업이 들어온다면 중소기업보다 성과가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 이 제도는 산업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소기업을 보호함으로써 극단적인 양극화를 막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다. 

끊임없이 효율화와 자동화를 추구하는 대기업이 고용을 창출하는 능력이 약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영세한 분야까지 대기업이 진출함으로써 퇴출당하는 인력을 재고용할 분야는 찾기 어려울 것이며 이는 그렇지 않아도 부담되는 사회복지 부문의 지출 증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 제도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주장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대기업이 들어오면 일단 소비자의 선택권은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궁극적으로 독과점화하면서 오히려 선택의 여지는 줄어들 것이며 소비자가 높은 가격에 시달릴 우려는 작지 않다. 

국내 대기업을 역차별하고 외국기업에 자유로운 진입을 허용한다는 주장도 반박의 여지가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에 외국기업이 진입함으로써 어느 정도 경쟁 압력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다. 더구나 이들은 영세한 시장을 지배할 만큼 국내 소비자의 니즈에 밝지 못하다. 

제과점의 경우 2013년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됐을 때 우려했던 것처럼 외국 업체들이 시장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또한 중소기업적합업종의 지정 기간은 3년이므로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나타난다면 동반성장위원회가 지정을 연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는 많은 비판에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경제적 양극화를 막고 산업의 균형성장을 이룬다는 대의명분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시행한 대국민 인식조사를 보면 국민의 97.5%가 동반성장 정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얄팍한 산업 논리에 치우쳐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한다면 이는 소탐대실의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 정책연구 담당(상무보) ▲KT그룹 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 정책 전문가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