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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나의 잊지 못할 여름휴가 - 장준호 인포뱅크 대표
"우리 아빠 최고예요~" 가족애 재확인
직장 핑계로 가족에 소홀했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 되새긴 시간






인포뱅크를 창업하기 한두 해 전쯤인 1990년대 초반 경으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지금은 구조본(구조조정본부)으로 불리는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삼성SDS로 자리를 막 옮겨 근무하고 있던 터였다.

그 해 여름 우리 가족은 여느 때처럼 강원도 용평-설악산 코스로 휴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산과 계곡, 그리고 탁 트인 동해 바다를 함께 만끽할 수 있어 늘 즐겨 찾는 코스다.

휴가 여행 출발일. 저녁에 떠날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아내에게 엄명을 내려 놓고 회사 일을 서둘러 마친 후 귀가를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아내는 워낙 공사다망한 터라, 내가 퇴근한 후에도 준비상태는 전혀 아니올시다 였고, 공처가인 나는 속절없이 아내의 지휘 아래 짐 꾸리는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돈 벌어오기에도 허리가 휘는데, 집에 와서까지 허리를 굽혀 일해야 하다니…, 터져 나오는 푸념을 겨우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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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문제는 자동차 키를 가지고 막 집을 나서려는 순간에 벌어졌다. 우리 집 미래의 희망인 장남이자 둘째, 장기석 군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었다. 첫째인 여섯 살짜리 인선이는 기특하게도 자기 방에서 제 짐을 벌써 챙겨 놓았는데, 우리의 대들보인 기석이는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네 살인 기석이는 평소 아침을 먹자마자 아파트에서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1, 2호 줄에 사는 친구 집을 순방하면서 우의를 다짐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 날도 아침부터 엄마가 6시 이전에 집에 들어오라고 엄명을 내렸지만 7시가 다 지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수소문을 한 끝에 7시 30분 즈음에야 나타난 장남에게 마누라는 불호령을 내리고, “너는 데려가지 않을 테니 친구 집에 가서 놀든 말든 마음대로 해!” 하면서 집 밖으로 내몰았다. 아들 놈은 밖으로 쫓겨 났는데…, 이 때 우리의 장녀가 등장했다. 자기 방에서 나와 급히 신발을 신더니 기석이 뒤를 쫓아 나갔다. 5분쯤 지났을까, 인선이는 울며불며 동생의 손을 꼭 붙잡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기석이를 버리고 가면 안돼. 엄마, 기석이 데리고 가. 잉잉잉.”

누나는 울어서 앞이 안 보이는 지경인데 정작 사건을 일으킨 동생 기석이는 심통이 난 표정에 반성의 기미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장녀의 애절한 호소에 우리는 기석이도 같이 여름 휴가팀에 합류를 시켰다. 아, 남매의 우애가 이렇게 기특할 수가!

녀석들은 하지만 역시 장난꾸러기 철부지들이었다. 분당을 출발해서 서울 톨게이트를 미처 지나기도 전에 이미 차 뒷좌석에서는 인선이와 기석이가 다투는 소리가 요란했다. “엄마, 기석이 봐. 얘 괜히 데려왔어!” “누나가 먼저 다리를 나한테 뻗으니 그렇지. 아빠, 누나 혼내줘!” 그러면 그렇지, 언제부터 그렇게 동생을 애틋이 챙겼다고….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흐뭇한 웃음이 배어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당시 휴가에서 얻은 소득은 적지 않았다. 오랜 만에 부자지간 우의를 돈독히 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 엄마보다 더 인기를 누렸던 것. 일에 치여 조금은 소홀했던 가장과 아버지로서 역할도 다시금 되새겼다. 사실 휴가를 어디로 가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일까. 가족끼리 떠나는 휴가는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서로 간 사랑을 확인하고 가슴에 새기는 데 뜻이 있는 것 아닐까.

잠시였지만, 설악산 등성이의 계곡에서 인선이, 기석이, 그리고 처와 함께 보냈던 추억 속 사진을 보면서, 저 나이의 손주를 보려면 앞으로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할까, 우리 가족의 먼 훗날을 미리 그려 본다.

입력시간 : 2005-07-1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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